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임신중지약’ 미프진 입법 공백은 여전… 쟁점은?

정부가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임신중지약 ‘미프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무려 7년 만이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와 달리 ‘입법 공백’은 여전하다. 낙태 허용 시기 등을 둘러싼 제도적 사각지대를 해소하지 않을 경우 현장의 혼란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시민단체는 관련법을 정비해 낙태 허용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종교계는 태아생명권을 이유로 낙태 허용 자체를 반대한다. 의료계는 입법 공백 상황에서는 책임 소재 등 부담이 큰 만큼 제대로 된 처방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과 관련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신 중지 약물 ''미프진''과 관련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

성평등가족부와 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는 지난 16일 브리핑을 열고 내년 1분기까지 미프진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처방 대상은 임신 9주(63일) 이내 여성으로 보고 있고, 처방 가능 연령 등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초기 2년 동안은 원내 조제(의사 처방 후 병원 내에서 약을 짓는 것)로 운영될 예정이다. 병원 밖 약국에서는 살 수 없다. 

 

현행 모자보건법상 낙태는 임신 24주 이내일 때 부모의 유전 질환이나 성폭력에 의한 임신 등 특정 사유가 있을 때만 허용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7년째 후속 입법이 지연됐다. 이 때문에 모자보건법에 규정되지 않은 낙태도 처벌할 수 없게 됐다. 그사이 임신중지는 7년간 ‘회식지대’로 남아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불법적인 경로로 약을 구해야 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도 임신중지 허용 범위 등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국회 상임위에 머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남인순∙이수진 의원 등이 지난해 발의한 개정안은 허용 조건 자체를 삭제했다. 반면 국민의힘 조배숙 의원안은 임신중지 허용 주수를 22주로 단축하는 발의안을 내놨다.

 

정부가 미프진 도입을 공식화했으나, 구체적인 지침이 없어 후속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여성계에서는 현재 정부 발표로는 여성의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은 “원내 처방 및 조제 원칙은 철회돼야 한다”고 밝혔다. 원내 조제 방식은 절차가 엄격하고,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이들은 약을 받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부모 동의 조항이 자칫 미성년자를 음지로 내몰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용 가능한 임신 주수 확대 여부도 향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국내에서 허가를 신청한 미프진 제품의 임상시험이 임신 9주 이내 임신부를 대상으로 진행한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으나, 세계보건기구(WHO)는 미프진이 임신 주수 12주까진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도 임신 9주로 정했으며, 미국은 10주, 핀란드와 덴마크는 12주 등 각국 기준에 따라 다르다. 이와 관련 여성계는 9주 이내로 할 경우 임신 여부를 잘 모를 수 있으며, 의료 소외 지역에 있는 이들도 병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려 문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종교계는 미프진 도입과 낙태 허용 범위 확대에 강하게 반발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낙태를 ‘질서 있게’ 제도화할 뿐 그 본질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며, 오히려 생명 경시를 우리 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며 “진정으로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는 가장 약한 생명을 없애 여성의 어려움을 덜어 주는 사회가 아니라, 여성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 책임지는 사회다”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미프진 도입에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후속 입법 전까지 ‘거부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도입 자체를 반대하진 않지만, 입법 공백부터 해소해야 한다”며 “환자 안전과 의료인 보호를 위해 제도 시행 전에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의료인의 형사처벌 우려를 해소할 법적 근거를 서둘러 마련하고, 의사 양심에 따른 처방 거부를 보호할 방안도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