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에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가 성인 60명 중 1명꼴로 늘어나자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신규 감염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감염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치료를 받지 않는 환자도 상당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현지시간) AF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피지 정부는 최근 성명을 통해 지난해 HIV 신규 감염자가 2016명으로 전년보다 27% 증가했다며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2019년과 비교하면 신규 감염자 수는 16배로 늘어난 규모다.
아토니오 랄라발라부 피지 보건부 장관은 HIV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대해 전염병의 심각성과 시급하고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며 범정부 차원의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도 피지를 전 세계에서 HIV 신규 감염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는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UNAIDS에 따르면 피지의 신규 감염은 2010년부터 2025년까지 12배 증가했다.
지난해 피지에서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약 9100명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이 가운데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39%에 그쳤고,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감염 확산은 임산부와 신생아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HIV 양성으로 태어난 아기는 59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18명이 첫돌을 맞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임산부 100명 가운데 약 2명이 HIV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감염 경로에서는 성적 접촉과 주사기 공동 사용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됐다.
UNAIDS에 따르면 감염 경로가 확인된 사례 가운데 절반 이상은 성적 접촉을 통해 감염됐으며, 42% 이상은 약물 투약 과정에서 주사기를 공동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피지에서 HIV 감염이 급증한 배경으로는 약물 사용 확산이 거론된다. UNAIDS는 2010년대 중반 이후 주사 약물 사용과 관련한 HIV 감염이 증가하면서 피지의 HIV 유행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고 설명해왔다. 지난해에도 피지에서 새로 진단된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주사 약물 사용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피지 정부는 HIV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검사와 예방·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무료·자발적·비공개 HIV 검사를 확대하고 감염 전 예방요법(PrEP) 등 예방 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HIV 감염자에게 무료 치료를 제공해 조기 진단과 치료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UNAIDS는 피지 정부의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대응책을 환영하며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UNAIDS는 피지의 HIV 감염 증가와 관련해 감염 양상이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만큼 예방과 검사, 치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