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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전 민중의 함성’ 충북 음성군 사정리서 깨어날까

충북 음성군이 동학군과 항일의병의 발자취가 서린 사정리 추정묘소에서 그 실체를 밝히기 위해 시굴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20일 군에 따르면 음성읍 사정리 산46-1번지 일원에서 시굴조사를 하고 있다. 이 일대는 동학군 추정묘소가 있는 곳이다.

 

이번 조사는 지난 2일 개토제로 시작됐다. 동학군(항일의병) 추정묘소 4∼6호분 매장유산 조사를 위해서다. 충청북도역사문화연구원 조사연구팀이 맡아 465㎡ 규모로 진행하며 조사 결과에 따라 향후 정밀발굴조사를 할 예정이다

 

충북 음성군이 지난 2일 음성읍 사정리 일원 동학군 추정묘소 발굴조사에 앞서 개토제를 진행했다. 음성군 제공
충북 음성군이 지난 2일 음성읍 사정리 일원 동학군 추정묘소 발굴조사에 앞서 개토제를 진행했다. 음성군 제공

◆앞선 두 번의 아쉬움 딛고… 세 번째 진실 추적에 나서다

 

사정리 추정묘소에 대한 고고학적 규명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17년 실시된 1차 정밀발굴조사에서는 1호분 봉분에서 인위적인 성토 흔적이 확인되었으나 매장주체부와 유해, 유물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어 2019년 2차 정밀발굴조사 역시 2·3호분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나 매장주체부와 유해·유물은 미확인된 채 성격 미상의 구상유구와 조선시대 도기편·자기편 출토에 그치는 아쉬움을 남겼다.

 

◆130년 전 음성을 뒤흔들었던 치열했던 민중 항쟁의 서사

 

이런 고고학적 조사 배경에는 130여년 전 음성을 뒤흔들었던 민중 항쟁의 역사적 서사가 자리한다. 신영우 충북대학교 명예교수의 연구 등에 따르면 갑오개혁 이후 주민의 91%가 농업에 종사하던 전형적인 소농 사회였던 음성은 1893년 보은 집회 당시부터 적극적인 정치운동의 흐름을 보였다. 당시 이들은 외국 침략 세력과 양복 물결을 배격한다는 ‘척왜양사’, 탐관오리의 뿌리이자 당시 권력의 핵심이었던 외척 세력을 몰아내자는 ‘민씨축출사’ 그리고 고통 받던 농민들에게 멍에가 되었던 세금을 개혁하자는 요구 등을 거세게 외쳤다.

 

1894년 9월, 동학 지도자 최시형이 전국 각지의 교인들에게 봉기를 명한 총궐기 지시령(기포령)과 함께 경기·강원·충청 삼도의 북접농민군이 현재의 음성군 삼성면 능산리 일대인 황산과 무극리 일대에 집결해 수만에서 수십만명의 세력을 형성했다. 이들은 음성 관아의 습격해 무기를 탈취하고 군수물자를 확보하는 등 주체적인 무장 투쟁을 전개했고 당시 음성현감 윤필이 농민군에게 군기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고 파직되었다가 유임 탄원으로 겨우 복귀했을 정도로 음성의 밤은 뜨거웠다.

 

이후 통령 손병희의 지휘 아래 북접농민군은 공주로 출진해 대교. 이안, 우금치 등에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 연합세력에 맞서 목숨을 건 혈전을 치렀다. 비록 열세한 무기 앞에 회군과 패퇴의 아픔을 겪었으나 이들의 저항은 구한말 음성 지역의 의병항쟁으로 이어지는 이어지는 거대한 항일 무장투쟁의 뿌리가 되었다.

 

충북 음성군이 2019년 2차 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를 열었다. 음성군 제공
충북 음성군이 2019년 2차 정밀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를 열었다. 음성군 제공

◆문헌 속 흩어진 발자취, 고고학을 통해 오늘의 역사로 되살린다

 

군은 문헌과 구전 속에 흩어져 있던 음성지역 동학농민혁명과 항일의병의 역사적 진실을 복원 중이다. 이에 이 조사는 음성의 항일 서사를 현재의 역사로 되살려 내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번 조사는 지역 내 항일의병 활동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인 사정리 추정묘소의 성격을 명확히 밝히고 지역의 항일의병 활동의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며 “3차 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실체와 역사적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향후 보존 및 활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충실히 확보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