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훈 기자]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에이스’ 이현중(26·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은 상대 일본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며 예의를 다 했다. 그 이후에야 우승의 감격이 밀려왔다. 대표팀 동료들을 끌어안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미국프로농구(NBA) 무대를 향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이현중에겐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너무나 간절했다. 2000년생으로 만 25세인 이현중에겐 이번이 사실상 병역혜택을 위한 마지막 아시안게임이었다. 그래서 이현중은 달리고 또 달렸고, 쏘고 또 쐈다. 주득점원 역할 뿐만 아니라 리바운드도 사실상 혼자 다 걷어내다시피 했다. 그렇게 이현중은 조별리그부터 결승까지 ‘원맨쇼’로 한국 남자 농구의 12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다. 이제 병역 의무라는 굴레를 훌훌 털어내고 NBA 도전의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할 수 있게 된 이현중이다.
이현중을 앞세운 한국 남자농구가 2014 인천 이후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정상에 섰다. 2002 부산에 이어 2014 인천에서 12년 만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한국 농구는 또 다시 12년 만에 아시안게임을 제패했다. 12년의 법칙인걸까. 아무튼 직전 대회인 2022 항저우에서 8강에서 탈락해 역대 최저인 7위로 곤두박질쳤던 것을 한 방에 되갚았다.
니콜라이스 마줄스(라트비아) 감독이 이끄는 한국 농구 대표팀은 20일 일본 나고야의 아이치 인터내셔널 아레나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결승에서 일본을 67-57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통산 5번째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승리의 주역은 단연 이현중이었다. 이날 결승에서 이현중은 3점슛 5개 포함 27점을 몰아쳤다. 아투율은 66.7%, 3점슛 성공률은 62.5%였다. 효율도 최강이었다. 눈에 띄는 숫자는 리바운드. 공격 리바운드 4개 포함 무려 18개를 걷어냈다. 이날 한국이 리바운드 싸움에서 43-54로 밀렸는데, 이현중 혼자서 팀 리바운드의 절반에 가까운 18개를 걷어냈다. 그만큼 이현중은 슛뿐만 아니라 궂은 일에서도 앞장 섰다는 얘기다. 이현중은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평균 득점 2위(24점),리바운드 2위(9.7개), 스틸 2위(2.3개)에 오르는 등 에이스로 존재감을 떨쳤다. 이제 한국 농구는 부인할 수 없는 ‘이현중 시대’가 열린 셈이다.
물론 이현중 혼자서 해낸 건 아니었다. ‘마줄스호’는 사실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지난해 말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인 마줄스 감독이 부임한 뒤 내용도 결과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이어졌고, 마줄스 감독이 아시안게임 활용을 기대하며 발탁했던포워드 송교창(오사카 에베사), 안영준(SK)이 부상 등의 이유로 합류하지 못한 것도악재였다.
여기에 귀화 선수가 없는 것도 대표팀엔 아픈 부분이었다. 2018년부터 귀화 선수로 태극마크를 달고 골 밑을 지켰던 라건아가 2024년 동행을 마치면서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새로운 귀화 선수를 영입하고자 애썼으나 2년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정상을 두고 경쟁하는 국가 대부분이 귀화 선수를 보유한 상황에서 대표팀은 국제 경기를 치르며 높이의 열세를 절감하곤 했다.
우려 속에 나섰으나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은 탄탄한 수비와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 필요할 때 터지는 외곽포 등이 어우러지며 아시아 정상 탈환에 성공했다. 지난 시즌 KBL 최우수선수(MVP) 이정현(소노)은 대회의 첫 고비로 여겨진 일본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25점을 넣은 것을 비롯해 이현중과 공격을 이끌어왔고, 이날 결승전에서도 이현중과 나란히 두 자릿수 득점(14점)을 올려 기여했다. 국가대표로 102경기를 치른 '캡틴' 이승현(현대모비스)과 1991년생 맏형 장재석(KCC)은 대표팀의 사실상 '유이한' 빅맨으로 골 밑에서 분투했다. 부산 KCC의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앞장선 뒤 미국 무대 도전을 선언하고 해외에 머물던 핵심 포워드 최준용은 토너먼트에서 합류하는 투지로 팀에 무게감을 더했다.
국군체육부대 소속으로 이번 대회에 나선 이우석은 공수에 걸친 활약으로 ‘조기전역’을 스스로 이뤄냈고, 안영준의 부상 이탈로 급히 대체 발탁된 포워드 문정현(kt), 국내 정상급 가드 유기상(LG)과 변준형(정관장)도 제 몫을 했다. 이현중과 더불어 '미국파'인 여준석(시애틀대), 문정현의 친동생인 2004년생 가드 문유현(정관장), 아버지가 영국인인 2007년생 에디 다니엘(SK)은 성인 국가대표로 첫 국제 종합대회에서 뜻깊은 경험을 하며 미래 기대감을 밝혔다.
이번 금메달이 분명 빛나는 성과지만, 여기에 만족해 귀화 선수 없이 버티기에는 세계 무대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과 향후 올림픽까지 바라본다면 귀화 선수로 ‘황금 세대’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