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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루질, 시작보다 중요한 ‘끝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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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법을 연구하며 사람의 판단과 행동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의 문제를 고민해 왔다.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허용될 수 있는지, 경찰관의 직무행위가 적절했는지를 살필 때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당시의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했는가 하는 점이다. 같은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무엇을 알고 어떻게 판단했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그 행동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해양경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바다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안전정책을 접하면서 법이 행위 당시의 상황과 그에 대한 인식·판단을 중요하게 살피는 것처럼 바다의 안전 역시 순간의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에 달려 있다는 점을 느낀다. 위험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상황의 변화를 제때 알아차리고, 위험이 커지기 전에 스스로 행동을 바꾸는 판단이 사고를 막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김재봉 해양경찰위원회 위원장
김재봉 해양경찰위원회 위원장

최근 잇따르는 해루질 사고를 접할 때마다 이러한 생각은 더욱 분명해진다. 사고를 당한 이들이 처음부터 위험을 무릅쓰려 했던 건 아닐 것이다. 물이 멀리 빠져 있고 바다가 잔잔해 보이면 “아직은 괜찮겠지”,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기 쉽다. 그러나 갯벌은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위험을 판단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바닷물은 멀리서부터 서서히 들어오는 것처럼 보여도 지형에 따라 예상보다 더 빠르게 길목을 막을 수 있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들어온 길과 돌아갈 길을 쉽게 혼동하기도 한다. 조금 더 하려는 마음과 방심 속에 머무르는 사이 밀물이 시작되고, 드러나 있던 길이 물에 잠기면서 어느 순간 퇴로가 끊길 수 있다. 위험을 알고 있었더라도 제때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인식만으로는 자신을 지킬 수 없다.

 

해루질을 할 때는 ‘얼마나 더 할 것인가’보다 ‘언제 돌아갈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출발 전 물때와 기상을 확인하고, 갯벌에 들어가기 전에 돌아올 시각을 미리 정해두는 게 중요하다. 간조 시각까지 머무르기보다 충분한 여유를 두고, 최소한 간조 1시간 전에는 활동을 마치고 육지로 이동해야 한다. 조개나 낙지를 ‘조금만 더’ 잡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처음 정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안전수칙은 위험한 순간 떠올리는 경고가 아닌, 위험해지기 전에 행동을 바꾸게 하는 기준이어야 한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휴대전화를 방수팩에 보관하며, 혼자 들어가지 않고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것도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수칙이다. 특히 야간이나 안개가 낀 상황에서는 시야가 제한돼 육지 방향을 잃기 쉽고, 갯벌 곳곳에 형성된 깊은 갯골은 물이 차오르면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출입 통제구역에 들어가지 않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구명조끼를 벗지 않는 것처럼 기본수칙을 끝까지 실천하는 것이 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가을철은 낚시와 해루질 등 바다 활동이 늘어나는 시기다. 추석은 음력 보름을 전후한 대조기와 겹치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조기에는 평소보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지고 만조 때 해수면도 높아진다. 연휴를 맞아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만큼 익숙하지 않은 갯벌이나 해안에서는 평소보다 한층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바다는 익숙한 사람에게도 늘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제 안전했던 길이 오늘도 안전하리란 보장은 없다.

 

이번 가을 바다를 찾는다면 무엇을 얼마나 잡을지보다 ‘언제 돌아올지’를 먼저 약속하자. 물때를 확인하고, 구명조끼를 입고, 서로를 살피며, 정해진 시간에 돌아서는 것. 안전은 위험을 아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위험해지기 전에 판단하고, 때를 놓치지 않고 행동하는 것, 해루질에서는 시작보다 ‘끝의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김재봉 해양경찰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