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2일 한화시스템 구미사업장을 찾아 육·해·공·우주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국방 인공지능(AI) 역량 확보를 주문했다. 그룹 전체적으로 미래 방산 기술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 방산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현지에 탄약 생산시설을 짓는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안전 확보를 위한 파병 등 군사적 역할 확대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취약한 탄약 공급망을 현지에서 보완하는 이번 투자가 간접적인 군사적 기여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회장은 이날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과 함께 한화시스템 구미사업장을 방문해 레이다와 함정전투체계 등 첨단 방산제품의 생산·시험 현장을 둘러보며 AI 기반 미래 방산 역량을 점검했다. 구미사업장은 천궁-Ⅱ 다기능레이다와 KF-21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다, 함정전투체계 등을 개발·생산하는 한화 방산전자 부문의 핵심 거점이다.
김 회장은 “한화그룹 방산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은 AI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오션이 만드는 육·해·공·우주의 핵심 전력을 AI 지휘통제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한화시스템은 한화 방산의 두뇌이자 신경망”이라며 “어느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국방 AI 역량을 키워나가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법인 한화디펜스USA는 아칸소주 미 육군 기지인 파인블러프 아스널(PBA)에서 현지 사무소 개소식을 열었다.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1월 미 육군이 파인블러프 아스널 부지에 민간 탄약 생산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실시한 임대사업 공모에서 사업자로 선정됐다. 미 육군이 보유한 부지를 한화에 빌려주고, 한화가 자체 자금을 투자해 미국 현지에 탄약공장을 짓는 방식이다. 이번에 문을 연 사무소는 공장 건설과 운영 준비를 담당할 현지 거점으로, 대규모 탄약 생산기지 조성에 착수한 것을 의미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향후 7년간 22억달러(약 3조원)를 투자해 이곳에 ‘한화 첨단제조 캠퍼스’를 조성한다. 이 공장에선 미 육군의 주력 화포에 쓰이는 155㎜ 포탄의 구성품과 포탄을 포신 밖으로 밀어내는 폭발력을 만드는 추진장약을 생산할 계획이다. 새 공장에는 원료 가공부터 부품 생산, 장약 조립과 완제품 검사에 이르는 공정을 한곳에서 처리하는 통합 생산체계가 들어선다. 한국에서 만든 부품을 미국으로 가져가 단순 조립하는 수준을 넘어, 탄약 생산의 주요 공정을 미국 현지에 옮겨놓는 것이다. 생산라인은 자동화 설비를 중심으로 구축되며 약 400명의 현지 인력도 채용할 예정이다.
한화 측은 국내 방산기업이 미국에 방산제품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미 코네티컷주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항공엔진 부품공장이 있지만 한국 측의 현지 방산 공장은 아직 없다.
이번 투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미국의 탄약 생산능력 부족을 한국의 대량생산 역량으로 보완하는 의미가 있다. 첨단·고부가가치 무기체계에 투자를 집중하며 재래식 탄약 산업 기반이 취약해진 미국은 최근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필요한 물량을 충족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북한과 장기간 대치해온 한국의 탄약 양산 능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된다. 한화는 탄약 생산 거점과 지난달 미 육군과 시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앨라배마주에 마련 중인 K9 차륜형 자주포 거점을 연계해 지상 방산 분야의 현지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탄약 생산시설 건설은 최근 대미 투자나 호르무즈해협 파병 논의와 별개로 수년 전부터 추진돼 온 사업이다. 다만 투자 발표 시점이 미국의 동맹국 역할 확대 요구와 맞물리면서 외교·안보적 의미도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이 한국에 더 큰 군사적 역할을 주문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이 미국 현지에 군사 관련 생산능력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한?미동맹에 대한 산업적 기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쿨터 한화디펜스USA 대표는 “한화의 제조 역량을 기반으로 투자 및 고용 창출 등을 통해 미국 방위산업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며 “미국 탄약 산업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양국 방산협력 확대에도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