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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AI속도조절론과 한국

“인류멸망” AI 속도조절 논쟁
빅테크·미·중 상호 견제 치열
한국, 기술 개발 멈춰선 안 돼
관리 체계 논의도 적극 나서야

‘집단행동의 논리’라는 것이 있다. 미국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이 1965년 제시한 이 이론은 공동의 이익이 있다고 해서 개인 행위자들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집단 내에서 개인은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성공하면 나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이른바 ‘무임승차’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집단이 커질수록 개인의 기여도는 티가 나지 않기에 행동에 나서는 사람은 적어진다.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하겠지”라는 심리다. 올슨은 또 모두가 하지 않을 때 나 혼자 행동해서 얻는 편익이 비용보다 크면 행동할 유인이 된다고도 설명한다. 반대로 해석하면 혼자 했을 때 이득이 작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최근 국제사회에 뜨거운 이슈로 부상한 인공지능(AI) 속도조절 논쟁을 보면서 이 집단행동의 논리가 떠올랐다.

이진경 국제부장
이진경 국제부장

이달 초 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을 퇴사한 연구원 제이컵 콕슨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AI 기업들이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성능을 개선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에서 안전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며 “AI 개발자들은 이 기술이 이번 10년이 끝나기 전에 우리 모두를 죽일 수도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자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AI 모델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속도조절론’에 불을 댕겼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이 이 의견에 동조하며 확대됐다.

같은 AI 업계라도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AI로 세상이 끝날 확률은 0%”라며 반대편에 서 있다.

정치권도 의견이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질 수 있다며 AI 개발 속도조절을 정면으로 거절했다. 일부 백악관, 여당 공화당 인사들은 AI 개발에 신중한 입장이다. 중국은 미국 AI 빅테크(거대기술기업)들이 제기한 멸망론과 속도조절론은 “공포 조장과 대립, 악성 경쟁”이라며 비판한다.

안전하게 AI를 이용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참여자 중 누구도 먼저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합의해도 이를 지키지 않는 소수가 있어 결국 이행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AI는 수많은 국가와 기업이 얽혀 있고, 돈을 벌기 위한 비즈니스와도 연결된다. 모두 한 박자씩 속도를 늦추는 것이 바람직하다지만, 경쟁국이, 경쟁기업이 지키지 않으면 나만 손해 볼 수 있는 구조여서다. 당장 AI 개발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한 앤트로픽도 오픈AI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차세대 모델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진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불붙은 AI 속도조절론은 한국 입장에선 공허하다. AI의 속도를 늦출 것인지를 놓고 미국과 중국, 빅테크들이 치열하게 대립하지만 한국의 목소리에는 아직 힘이 실리지 않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 아니다를 말하려면 우선 선두그룹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국정과제에 ‘AI 3대 강국 도약’을 포함해 전력을 다해 달리는 중이고, 적어도 독자적인 AI 모델 개발에서는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다. 그러나 아직 1, 2위를 다투는 미국·중국과 격차는 무척 크다. AI 강국·빅테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AI 기술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안전한 AI 이용을 위한 규범 논의에는 한국이 주요 역할을 할 수 있다. 위험한 AI에 관한 최소한의 범주나 AI로 인한 사고의 처리 절차 등은 최악의 위험을 막기 위해 언젠가는 만들어져야 하는 국제 규율이다. 이미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20개국의 주도하에 AI에 대한 인간의 지시·감독·통제가 유지돼야 하고, 이를 위한 감독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제안문을 발표하는 등 다른 나라가 먼저 나서고 있다. 한국은 이제라도 AI 후발주자를 이끌고, 이들의 의견을 취합해 구체적인 안전망과 관리 체계를 수립하는 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AI 시대의 규칙까지 후발주자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