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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에게 “유언비어 유포 말라”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는 국내에서 1200만명 넘는 관객을 불러모으며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1980년 5월 서울에서 외국인 손님을 택시에 태우고 전남광주까지 운전한 기사 만석(송강호)이 주인공이다. 거금을 주고 택시를 잡은 손님은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였다. 5·18 민주화 운동을 현장에서 취재해 전 세계에 알린 저명한 언론인이다. 5·18에 관해 전혀 몰랐던 만석은 광주 시내에 들어선 뒤 힌츠페터와 동행하며 엄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택시라는 평범한 대중 교통 수단이 민주화를 외치는 정치 무대로 바뀌는 모습이 생생히 그려졌다.

서울역 광장 앞 택시 승강장에 손님을 기다리는 빈 택시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평범한 대중 교통 수단인 택시가 때로는 ‘정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서울역 광장 앞 택시 승강장에 손님을 기다리는 빈 택시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평범한 대중 교통 수단인 택시가 때로는 ‘정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국 현대사에서 택시가 지닌 ‘정치성’이 제대로 드러난 장면은 아마도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 아닐까 싶다. ‘1987년 6월 항쟁과 택시 노조 운동’이란 제목의 학술 논문까지 나왔을 정도다. 반민주적 5공 헌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전두환정부에 맞서 시민들은 거리로 나가 ‘호헌(護憲) 철폐’와 ‘독재 타도’ 구도를 외쳤다.

 

당시 택시 운전사들도 도로를 점거해 경찰 차량 이동을 막거나 시위 진압 경찰을 향해 일제히 경적을 울리는 방식으로 항쟁에 동참했다. 이는 개별 운전사들의 우발적 행동이 아니고 택시 노조 조합원들의 조직적인 참여로 가능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밤늦게 술자리를 끝내고 귀가하는 직장인들을 태운 택시가 ‘정치 토론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두 명 이상의 손님이 정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도중 운전사가 슬쩍 끼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님이 한 명뿐일 때에는 그와 운전사가 정치를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대통령 등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미워하는 속내가 서로 같음을 확인하면 기분이 짜릿해진다. 유신(維新) 정권 시대에는 박정희 대통령이나 유신 헌법을 비방하면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 시절 누가 택시 안에서 대통령을 욕했다가 나중에 파출소로 붙들려 갔다는 흉흉한 소문이 파다했다. ‘택시 기사 중에 정보 기관 끄나풀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나돌 지경이었다.

 

‘세계 섬 박람회’ 행사가 열리는 전남광주 여수시가 지역 택시 회사에 보낸 공문이 화제다. 9월5일 개막한 박람회는 총 2개월간 관람객을 맞을 예정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행사장을 찾은 이가 약 20만명에 불과해 애초 목표로 잡았던 300만명 달성은 어려울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2026 여수 섬 박람회’ 개막을 앞둔 지난 8월29일 ‘프리뷰데이’ 행사가 열려 전남광주 여수시민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2026 여수 섬 박람회’ 개막을 앞둔 지난 8월29일 ‘프리뷰데이’ 행사가 열려 전남광주 여수시민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여수시 측은 택시 회사에 “박람회 준비 미흡 등 유언비어를 기사님들이 유포하고 있다는 여론이 있다”며 “유언비어 유포 금지와 섬 박람회 홍보 등을 위해 운수 종사자 교육(안내)을 해주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택시 기사 비하’ ‘과도한 입막음’ 등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여수시는 “박람회 흥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공문을 보냈다”고 해명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처럼 아무리 홍보를 잘해도 콘텐츠가 부족한 행사는 흥행 대박을 기대하기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