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는 추석 연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2026년 추석 연휴 통행실태 조사’에 따르면 이번 연휴 총 이동인원은 지난해보다 3.5% 감소한 3093만명 수준이다. 예전보다 비율이 줄었지만, 우리 국민 10명 중 6명은 귀성이나 여행길에 오르는 셈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노릇노릇 부쳐진 전과 송편이 놓인 식탁에 둘러앉아 처음엔 안부를 묻다가도 이내 정치 이야기로 대화가 번지곤 한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이 엉망이다”, “그래도 ○○○이는 잘하고 있지 않으냐”며 털어놓는 솔직한 넋두리가 바로 ‘밥상머리 민심’이다. 세대와 지역으로 나뉘어 있던 생각들이 한 식탁에서 뒤섞이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비로소 여론의 큰 물줄기가 형성된다.
정치권이 여야를 막론하고 밥상머리 민심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연휴 직후 이어지는 가을 정기국회의 주도권이 바로 이 식탁 위 평가에서 판가름날 수 있어서다. 추석 밥상에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오기와 불통의 화두를 올린 권력은 예외 없이 가혹한 청구서를 돌려받았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2년 차인 2014년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속으로 낙마하며 청와대 인사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정홍원 총리는 세월호 참사 수습 차원에서 사의를 표명했다가 후임을 찾지 못해 다시 유임되는 촌극까지 빚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단식 농성이 이어졌지만 청와대는 면담 요구와 거리를 뒀다. 인사 난맥과 ‘불통’ 논란을 안은 채 맞은 추석 이후 민심은 더욱 싸늘해졌다.
2019년에는 문재인정부가 추석 밥상머리 민심의 직격탄을 맞았다. 추석 연휴를 불과 사흘 앞두고 청와대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상황에서도 청와대는 임명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추석 연휴 내내 식탁 위는 사모펀드 투자 의혹과 자녀 입시 공정성 논란으로 달아올랐다. 연휴 직후 한쪽에서는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집회, 다른 한쪽에서는 조 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며 광장의 민심도 둘로 갈렸다. ‘조국 사태’의 후폭풍은 정권의 도덕성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버티기’ 대신 노선 수정과 정책 대안으로 밥상머리 민심을 돌리려 한 사례도 있다. 집권 첫해 광우병 촛불 정국에 흔들렸던 이명박정부는 이듬해인 2009년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국정 노선을 전면 수정했다. 추석을 앞두고 보금자리주택 공급, 서민 전용 소액대출 미소금융 등 생활 밀착형 정책을 내놓으며 민생 행보에 힘을 실었다. 2007년 임기 말 레임덕 위기에 몰렸던 노무현 대통령도 추석 직후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을 앞세워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국가적 의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추석 메시지에서는 좋아진 경제지표가 체감경기로 이어지도록 민생대책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제 선택은 이재명정부의 몫이다. 야심 차게 띄운 2기 개각 명단 중 용혜인·김승원 후보자가 낙마했고, 야권에서는 인사 실패를 자초한 청와대 인사 추천·검증 라인에 대한 문책과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다. 이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하며 인사 시스템 재점검을 약속했다. 이번 추석 밥상에는 인사 난맥뿐 아니라 고물가와 주거·일자리 등 민생의 어려움도 함께 오른다. 인사 실패를 얼마나 솔직하게 인정하고 민생 경제를 살릴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얼마나 빠르게 내놓느냐가 추석 이후 민심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