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9년 8월 2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의 한 장면이다. 노란 손팻말이 서울 광화문 거리를 채웠다. ‘줄서기를 생활화하고 차례를 지킵시다’, ‘공공시설물을 내 것처럼 아껴 씁시다’, ‘영수증 주고받기를 생활화합시다.’ 고건 당시 서울시장과 초록색 모자와 조끼를 맞춰 입은 시민들은 손팻말을 들고 한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지금 보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생활수칙이 당시에는 시민운동의 이름으로 거리에서 반복해 강조됐다. 새마을운동 범시민 기초질서 지키기 운동 협의회 회원들은 이날 광화문 일대에서 거리 정화활동과 함께 시민 캠페인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거리에 버려진 휴지와 담배꽁초를 직접 주우며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질서를 알렸다. 손팻말뿐 아니라 가슴에 두른 어깨띠에도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공공시설물을 아껴 씁시다’ 등의 문구가 적혔다.
1990년대 후반 거리에서는 이처럼 ‘기초질서’를 강조하는 캠페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쓰레기 무단투기와 담배꽁초 버리기, 새치기 등 일상에서 흔히 마주하는 행동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을 시민 스스로 실천하자는 운동이 거리 곳곳에서 이어졌다.
‘휴지·꽁초 버리지 맙시다.’ 오래된 필름 속에는 ‘기초질서’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이를 시민의 일상으로 만들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시대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당시 거리 캠페인의 방식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단체 모자와 조끼, 어깨 띠를 착용한 참가자들이 대형 손팻말을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에 선 사람들은 흰 장갑을 낀 채 주먹을 들어 구호를 외친다.
캠페인 장소 뒤편으로 보이는 세종문화회관에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리차드 클레이더만’의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 출범기념 내한공연과 ‘금난새와 함께하는 여름 가족 음악회’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기초질서 캠페인을 기록한 사진 한 장에 1999년 여름 서울 도심의 시대적 풍경까지 함께 들어왔다.
2026년 지금,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서울을 여행하며 우리의 발전된 공중도덕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에피소드를 SNS에 올린 사진과 영상은 수없이 많다. 카페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과 스마트폰, 수백만 원짜리 명품 가방이 자리를 비워도 온전한 모습, 지하철 플랫폼 바닥에 그려진 승하차 유도선에 맞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일렬로 줄을 서 있는 모습, 지하철 문이 열리자 안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모두 하차하고 줄지어 승차하는 모습 등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 화재가 되어 전 세계에 훈훈하게 소개되고 있다.
27년이 흐른 지금, 당시 캠페인에서 강조했던 내용은 시민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기초질서 지키기 캠페인’의 효과가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 들어 시민들은 행동했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