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주요 금융지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대거 교체를 앞두고 인사 과정을 투명하게 다듬으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지주사의 의중대로 자회사 대표가 사실상 내정되던 ‘참호 구축’ 관행을 깨고, 자회사 이사회의 실질적인 검증 권한을 보장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권이 최근 관련 규정 개정에 나서고 있지만, 당국은 구체적인 자격 요건과 객관적 평가 기준이 실제 작동해야 한다며 고삐를 늦추지 않는 모양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23일 8개 금융지주 회장 등과 조찬 간담회를 열고 “CEO 선임 절차는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선별하는 절차로 운영돼야 한다”며 자회사 CEO 선임 과정의 공정성을 주문했다. 지난 15일 임원회의에서 금융지주 자회사의 승계절차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지 약 일주일 만에 또다시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다. 그는 특히 지주회사의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를 겨냥, 금융사지배구조법 취지에 따라 자회사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회사 임추위 실질 권한 보장”
당국은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계열사 이사회의 독립적인 기능을 되살려 지배구조의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통상 금융지주 계열사 CEO는 지주의 자추위가 후보를 추천하면 임추위와 이사회가 이를 추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해 초 지주 회장의 지배구조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계열사 이사회의 선진화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이라며 “지주 자추위의 권한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법과 내규로 존재하는 자회사 임추위가 도입 취지에 맞게 최소한의 실질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당부”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이런 압박은 올해 말 금융지주 자회사들의 대규모 경영진 교체 시기와 맞물려 강화하는 분위기다. 연말 임기가 만료되는 5대 금융그룹(KB·우리·하나·신한·NH농협) CEO는 계열사 5대 은행장을 비롯해 총 54명에 달한다.
앞서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예상을 깨고 현직 회장 대신 이재근 부문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선택하며 이사회의 견제 기능이 부각된 사례도 향후 은행장 인사의 변수로 꼽힌다. Sh수협은행 차기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신학기 현 은행장과 이형주 금융정보분석원 원장이 각각 3표와 2표를 얻는 데 그치며 재협의에 들어간 상황 역시 깐깐해진 CEO 선임 과정의 진통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도 정비 나선 금융권
금융당국의 압박 속에 금융권은 속속 제도 정비에 나서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승계절차를 개시하며 은행 임추위에 후보군 추천 권한을 부여했고, BNK금융지주는 임추위가 직접 후보를 추천하고 지주 최종면접 참관까지 명문화했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경영승계 절차를 3개월 전으로 앞당겨 심사 기간을 늘렸다.
당국은 다만 제도의 외형적 개편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의 안착을 주시하고 있다. 또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부 긍정적인 변화 조짐이 있지만 여전히 인사 절차를 밟아야 할 계열사만 수십 곳”이라며 “특히 은행이나 증권사 등 굵직한 자회사에서 제도를 자율적으로 정비하고 작동시키는지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내부에서는 추천 권한 분산이 지주의 경영 통제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회사 CEO 인사권은 그룹 전체의 전략을 조율하고 내부통제를 강제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인데, 권한과 책임 소재가 엇갈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연이어 인선 관련 주문을 내놓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계열사와 지주회사 간의 합도 중요한데, 추천 권한과 경영 책임이 분산된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두고 분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