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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대신 조용히 곁에”…뱅크 정시로가 비를 맞는 이들에게 건넨 노래

‘가질 수 없는 너’ 넘어 작사·작곡·편곡·프로듀싱까지
신곡 ‘TAKE THE RAIN’ 발표…“힘내라 대신 조용히 곁에”
“무엇을 더할지보다 무엇을 남겨둘지 고민하게 돼”

“‘가질 수 없는 너’를 부른 가수로 기억해 주시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다만 제 본질은 음악 전체를 설계하고 완성하는 창작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룹 뱅크의 정시로는 자신의 음악 인생을 대표곡 한 곡으로만 설명하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보컬리스트인 동시에 작사와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음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이끌어온 창작자라는 것이다.

 

지난달 20일 발표한 신곡 ‘TAKE THE RAIN’은 정시로가 지금까지 걸어온 음악과 현재의 감정을 함께 담은 곡이다. 이별과 상실, 후회와 외로움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서둘러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비라면 잠시 온몸으로 맞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넨다.

 

◆“‘힘내라’는 말조차 부담일 때가 있다”

 

정시로는 곡 제목에 담긴 의미를 묻자 “우리는 비가 오면 먼저 피할 곳을 찾지만 삶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비가 있다”고 말했다. 이별과 상실, 후회와 외로움처럼 누구나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감정들이다.

 

그는 “그럴 때 무조건 괜찮은 척하거나 빨리 벗어나려고 하기보다 때로는 그 비를 온전히 맞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TAKE THE RAIN’은 슬픔에 머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뒤 다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곡이 건네는 위로도 조심스럽다. 힘든 사람에게 해답을 제시하거나 빨리 일어서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정시로는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부담이 될 때가 있다”며 “누군가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기보다 그 옆에 조용히 서 있는 음악이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당장 괜찮아지지 않아도 되고 잠시 비를 맞아도 된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며 “음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한 사람의 외로운 시간을 함께 지나갈 수는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가 바라는 감상법도 거창하지 않다. 하루를 마치고 혼자 돌아가는 길이나 지나간 사람이 문득 떠오르는 밤, 마음이 무겁지만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에 이 곡을 들어주기를 바랐다.

 

“이 노래가 크게 위로하려 들기보다 조용히 곁에 앉아 있는 친구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노래부터 악기·여백까지 직접 설계

 

‘TAKE THE RAIN’은 정시로가 작사·작곡·편곡을 모두 맡았다.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 키보드, 신시사이저 베이스와 드럼, 미디 프로그래밍에도 직접 참여했다. 대중에게는 주로 보컬리스트로 알려졌지만 음악 제작 전반을 설계해온 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정시로는 “노래 한 곡에는 멜로디와 가사뿐 아니라 악기의 질감, 호흡의 간격, 소리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하나의 감정으로 연결돼 있다”며 “제가 전달하려는 정서를 가장 온전하게 구현하려면 음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 참여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작곡을 곡의 뼈대를 세우는 일, 작사를 그 안에 이야기를 담는 일, 편곡을 이야기가 살아갈 공간을 만드는 일로 표현했다. 각 작업을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본다는 의미다.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절제’였다.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거나 극적인 장치를 겹겹이 쌓기보다 목소리와 악기가 하나의 정서를 향해 천천히 흐르도록 구성했다.

 

정시로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려고 했다”며 “절제된 목소리와 여백이 더 깊은 감정을 전달할 때가 있다. 보컬과 악기가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하는 데 공을 들였다”고 했다.

 

◆“강하게 보여주기보다 청자의 자리를 남긴다”

 

오랜 음악 활동은 그의 창작 방식도 바꿔놨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드러내려 했다면 이제는 듣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채워 넣을 공간을 남기는 데 집중한다.

 

정시로는 “음악가가 모든 감정을 설명해버리면 청자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며 “세월이 흐르면서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를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침묵과 여백도 음악의 중요한 일부라는 사실을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대표곡 ‘가질 수 없는 너’의 무게도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사랑받은 노래는 음악가에게 축복이지만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는 “대중이 기억하는 뱅크의 음악적 색채가 분명하기 때문에 부담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과거를 부정하거나 억지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요한 것은 과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위에서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숏폼과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음악이 빠르게 소비되는 환경에도 선을 긋기보다 시대의 변화로 받아들였다. 다만 짧게 만난 음악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에는 오래 남아야 한다는 기준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정시로는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제 시간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담긴 음악을 만들고 싶다”며 “한때 크게 들리고 사라지는 음악보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누군가 다시 찾아 듣는 음악을 남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보컬리스트이자 작사가, 작곡가, 편곡자, 프로듀서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