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것도 신기한 것 같아. 어차피 뚫릴 건데 어디서 왜 막히는 거야. 난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2008년 5월 방송된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이수근이 차량 정체를 두고 이처럼 반응했다. “맨 앞에 차가 있을 거 아닌가”라며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냐”는 그의 말을 전후해 화면에는 ‘길 뚫려주니 고맙긴 한데’, ‘애초에 왜 막혔는지 이유가 궁금한’, ‘듣고 보니 그도 그런…’ 자막이 연이어 나와 시청자의 웃음을 자아냈다.
18년 전 예능에서의 발언인데 운전자라면 누구나 비슷한 의문을 품을 때가 있었을 법하다. 막히던 도로가 뚫려 전진 중 ‘혹시 사고라도 났나’ 싶지만 지나고 보니 길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고, 어느새 내 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26일 관련 연구 등에 따르면 명확한 사고나 공사 등 뚜렷한 병목이 없는데도 차량 흐름이 느려지고 정체가 발생하는 현상을 ‘유령 정체(phantom traffic jam)’라고 한다.
차량이 몰려 차간거리가 좁아지면 뒤차가 앞차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속이 누적되면서 어느 지점부터는 차량이 멈춰 설 수 있다. 앞차가 속도를 조금 낮추거나 차선을 바꾸는 과정에서 뒤차가 브레이크를 밟고, 그 움직임에 다시 뒤따르는 차량의 반응이 이어지면서 처음에는 속도 변화가 작아도 나중에는 커질 수 있다.
고속도로처럼 차량 밀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상대적으로 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다. 차간 여유가 줄어든 상황에서는 앞차의 작은 움직임을 흡수할 공간이 부족해지고, 운전자마다 다른 반응 속도와 가·감속 행태가 겹치면서 교통 흐름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실험에서도 같은 현상이 확인됐다. 2008년 일본의 한 연구진은 길이 230m의 원형 도로에 차량 22대를 배치하고 일정한 속도와 간격을 유지하도록 했는데, 별도의 사고나 도로 장애물이 없는 상황에서도 차량 흐름의 작은 속도 변동이 점차 커지면서 정체가 생겼다. 당시 실험 영상은 ‘뉴 사이언티스트(New Scientist)’ 유튜브 채널에도 올라와 있다.
유령정체를 줄이기 위한 기술도 등장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설연)은 지난 22일 서울양양고속도로 금남터널에서의 ‘페이스 메이커 시스템(PMS)’ 적용 결과를 공개했다.
터널은 외부와 차단된 폐쇄적 구조에 제한된 시야, 조명 변화 등으로 운전자의 속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속도 변화가 뒤따르는 차량의 감속으로 이어지면서 사고나 공사 등 뚜렷한 병목이 없는데도 차량 흐름이 느려질 수 있다.
건설연은 터널 측면에 설치한 LED 유도등을 차량 진행 방향으로 순차 점등해 운전자가 빛의 흐름을 따라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PMS를 선보였다. 운전자가 별도의 판단을 추가로 하지 않고 빛의 흐름에 맞춰 주행하도록 유도해 전체 터널 구간의 평균 주행속도를 높이는 시도다.
실험에서 터널의 평균 주행 속도는 약 6.5% 증가했고, 혼잡도가 높은 상황에서도 약 10%의 속도 개선 효과가 확인됐다. 저속 차량의 속도 회복을 돕고 차량 간 속도 편차를 줄이는 효과도 나타났다는 게 건설연의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