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사람을 베개 삼은 모본왕, 보좌진 갑질 논란의 국회의원들 [김세희의 역사ON]

과거는 현재를 관통합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수천·수백 년 전 벌어진 사건과 문제는 오늘날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됩니다. 특히 사회·정치·경제 분야에서 빚어지는 고질적 병폐는 시대를 달리해 반복되고 있습니다.

 

‘김세희의 역사ON’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 등 사료에 기록된 사건·인물·제도를 오늘의 현안과 연결해 살펴보고 논평하고자 합니다. 과거를 성찰의 거울로 삼아 오늘의 현실을 이해할 단서를 찾겠습니다.

고구려 모본왕이 사람을 깔고 앉아있는 모습. 챗GPT 생성 이미지
고구려 모본왕이 사람을 깔고 앉아있는 모습. 챗GPT 생성 이미지

고구려 제 5대 왕 모본왕. ‘삼국사기’에 따르면 그는 자리에 앉을 때 항상 사람을 깔고 앉고, 누울 때는 베개로 삼았다. 사람이 움직이기라도 하면 용서하지 않고 죽였다. 충고하는 신하에게는 활을 쏘았다. 결국 모본왕은 자신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두로를 깔고 앉았다가 그에게 시해됐다. 

 

이 일을 폭군의 엽기적인 일화로만 넘길 일은 아니다. 권력자가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모본왕의 기행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조선 숙종 때 과천현감 목창우도 그랬다. 목창우는 지사(묏자리를 잡아주는 사람) 이유필이 잡아 준 묏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병졸을 보내 그의 부모 무덤을 채찍질하게 했다. 비석과 묘 앞 나무에는 모욕적인 글까지 쓰게 했다. 타인의 부모를 욕보이는 것도 모자라 개인적인 분노를 풀기 위해 관아의 병졸까지 동원한 것이다. 사헌부는 “사사로운 일로 해괴한 행동을 한 사람은 백성을 다스리게 할 수 없다”며 파직을 청했다. 숙종도 받아들였다. 

 

“너 그렇게 똥오줌도 못 가리느냐. 말 좀 해라!” “너 아이큐가 한 자릿수냐” “내가 정말 널 죽였으면 좋겠다.”

 

왕조가 사라지고 신분제도 무너졌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제 아래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반복된다. 올해 1월 공개된 이혜훈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녹취가 대표적이다. 녹취에는 이 후보자가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에게 폭언을 퍼붓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확보한 제보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자신에 대한 기사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고 폭언도 다반사였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했다.

 

국회의원들의 보좌진을 향한 갑질 논란은 이 한 건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보좌진에게 자신의 집 쓰레기를 버리게 하고 고장 난 변기를 해결하게 했다는 의혹이 도마에 오른 끝에 사퇴했다.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이후 현역 의원으로는 첫 낙마였다. 무소속 김병기 의원은 쿠팡으로 이직한 전직 보좌관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도록 요구했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최근 신약 청탁 의혹 등으로 법무부 장관 후보직에서 물러난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을 둘러싼 의혹은 꼬리를 물고 있다. 김 의원의 전직 보좌관 A씨는 지난 17일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텔레그램으로 김 의원의 성추행 의혹과 음주 운전 의혹, 보좌진 대상 욕설·폭언과 별도 청탁 의혹, 민주당 경기도당 위원장 재임 시절 회계 부정 의혹 등이 담긴 탄원서를 전달했다. 탄원서는 총 2부로 A씨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전직 보좌관도 작성했다. A씨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 의원 임명을 강행하려는 분위기라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전체를 위해 탄원서를 전달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김승원 의원실은 “언론에 보도된 탄원서 소문은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 오류가 있다”는 입장을 낸 상태다.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했느냐는 권력자의 됨됨이를 드러내 장면으로 오래 기록돼 왔다. 중요한 사실도 있다. 언젠가는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고구려에서 두로가 모본왕에 대한 거사를 앞두고 어떤 사람에게 들은 ‘서경’의 한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나를 잘 어루만지면 임금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