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열린 세계제조업대회. 개막식이 열린 허페이 빈후 국제컨벤션센터는 오전 10시 행사 시작 전부터 내외빈들로 북적였다. 행사 진행요원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커다란 행사장에는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온 2000여 명의 내빈이 자리를 채웠다. 기자와 동행한 안후이성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전시 총면적은 7만㎡로 지난해 5만9000㎡에서 확대됐다. 개막식도 지난해에는 전시장의 한 공간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커다란 전시관 하나를 통째로 비워 행사장으로 썼다.
왕둥밍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개막을 선언한 뒤, 량옌순 안후이성 당서기, 카를로스 마그리뇨스 세계중소기업연합 의장, 피터 윌슨 주중 영국대사 등이 축사를 이어갔다. 개막식 막바지에는 안후이성에 본사를 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5세대 D램 기술 플랫폼의 양산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오후가 되자 전시장에 시민들이 밀려들었다. 온라인으로 미리 등록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서인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관람객이 눈에 띄었다. 영상 크리에이터들도 상당수였는데, 꽤 전문적인 촬영 장비를 든 노인들이 많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통역을 맡은 청년은 “영상·사진을 촬영해 소셜미디어에 업로드하는 것이 요즘 중국 노인들의 새로운 취미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는 10개 전시구역에 900여 개 기업이 참가해 1만5000여 점의 제품을 선보였다. 메인관인 2호관에는 반도체, 태양광, AI, 배터리 등 안후이의 대표 산업 기업들이 몰렸고, 올해 행사의 주빈국인 영국과 주빈성인 쓰촨성 전시도 이곳에 자리했다. 글로벌 전시구역에는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이탈리아 등 20여 개국 기업이 참가했지만, 전체 규모는 ‘국제관’이라는 이름에 비해 다소 소박한 편이었다. 주최 측이 현장에서 ‘유일한 한국 기업’이라고 소개한 대양의료 역시 현지 합자공장 중심의 전시여서 한국 기업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글로벌 전시구역에는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이탈리아 등 20여 개국 기업이 참가했다. 다국적 기업의 중국 합작법인 부스가 여럿 보였지만, 전체 규모는 국제관이라는 이름에 비해 다소 소박했다. 주최 측이 전시 중 ‘유일한 한국 기업’이라고 소개한 대양의료도 현지 합자공장 중심의 전시여서 한국 기업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전시장 곳곳이 기업 홍보 중심으로 꾸며졌지만, 사람들을 가장 오래 붙잡아둔 건 단연 로봇이었다. 입구 근처 쓰촨관에서는 ‘변검 로봇’이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은 로봇이 팔을 올렸다 내릴 때마다 얼굴의 가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몰려들었고, 로봇이 걸어 다닐 때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로봇 및 실체형 지능 전시구역’은 2호관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다양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관람객과 직접 상호작용하고 있었다. 서예 로봇 앞에도 줄이 길었다. 기자가 ‘안후이’라고 적어달라고 하자 로봇은 주문한 글자가 맞는지 음성으로 확인한 뒤, 붓에 먹을 묻혀 천천히 글씨를 써 내려갔다. 거의 2분이 걸렸으니 한 글자에 1분꼴로 걸린 셈이다. 아쉽게도 다른 나라 언어는 쓰지 못했고, 글씨체도 한 가지로 고정돼 있었다.
얼굴은 사람 모습이고 몸은 로봇인, 다소 무섭게 보이는 로봇도 전시돼 있었다. 초중고 과학 교육 조교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으며 실제와 같은 신체 움직임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이런 모습의 로봇을 아이들이 편하게 여길지는 의문이 남았다.
가까운 곳에는 실제 사람 피부와 같은 질감의 실리콘 재질을 덮어씌운 로봇 손이 전시돼 있었다. 만져보니 움직임과 질감이 사람 손과 매우 흡사했다. 이런 재질을 로봇 전체에 입힌다면 공상과학 영화 속 로봇인간에 훨씬 가까워질 것 같았다.
꽃꽂이 로봇도 관심을 끌었다. 로봇은 두 팔로 가느다란 꽃가지를 집어 화병에 꽂았다. 관계자가 화병을 옮기자 센서가 이를 따라가며 다시 정확히 꽃을 넣었다. 동작은 느렸지만, 손끝은 꽤 섬세했다. 그 바로 옆에 전시된 택배 분류 로봇은 분위기가 달랐다. 상자와 비닐 택배가 쉼 없이 흘러오는 컨베이어벨트 위로 로봇팔 두 개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택배가 아닌 물건을 골라내고, 운송장이 아래를 향한 택배는 뒤집었다. 이 구역 로봇 중 가장 속도가 빨랐고 사람 손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이 로봇은 지난달 광둥성 선전에서 진행한 한 시간짜리 생중계 시연에서 시간당 1911건, 정확도 98%의 분류 성능을 기록한 바 있으며, 이미 택배 물류 현장에 투입돼 사용되고 있다.
요즘 중국의 이런 종류의 박람회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격투 로봇도 있었다. 지난해 상하이 커촹반에 상장한 유니트리 제품이다. 시연 시간에 맞춰 달려가니 링 안에 누워 있던 두 대의 로봇 중 한 대가 벌떡 일어났다. 양손에 글러브를 끼고 머리에는 보호장구를 쓴 채 빨간색 반바지까지 입은 모습은 제법 비장해 보였다. 다리를 앞뒤로 벌려 자세를 잡고 글러브를 낀 팔을 앞으로 절도 있게 찔렀다. 엉덩이를 치며 도발하는 제스처도 보였고, 작은 발로 빠르게 스텝을 바꾸기도 했다.
문제는 다른 로봇이었다.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링 바깥에서 개발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조종기를 바꿔보고, 로봇 몸통의 배터리를 뺐다가 다시 끼워보는 등 여러 시도를 했지만 5분 가까이 반응이 없었다. 결국 먼저 일어난 로봇이 승리를 선언하려는 듯 두 팔을 들어 만세를 했다. 그러다 순간 중심을 잃고 뒷걸음질치기 시작했고, 개발잡아 붙잡아 넘어지지 않게 했다. 그 모습이 다소 어설퍼 보이기도 했지만, 바로 쓰러지지 않고 스스로 발을 움직여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이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관람객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할 때였다. 흰 반바지를 입은 다른 로봇이 일어섰다. 5분 만에 두 로봇의 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둘은 서로에게 팔을 날리며 훅과 잽 포즈를 꽤 정교하게 취했고, 발차기도 주고받았다. 공격은 대부분 허공을 향했지만 간간이 얼굴에 강하게 들어갈 때도 있었다. 꽤 강하게 맞았는데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승부를 가리는 게임은 아닌 듯, 두 로봇은 같은 동작을 몇 번씩 반복하다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이날 2호관에서 만난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1~2학년생 정도의 키였고, 음성도 어린아이처럼 귀여웠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저 로봇들이 더 커진다면 어떨까. 사람만 하거나 사람보다 더 큰 몸집에, 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더 굵은 음성까지 갖추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낯설고 위압적인 존재로 다가올지 모른다. 감탄 뒤에는 묘한 두려움도 함께 남았다.
2015년 중국 정부가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내걸며 제조 대국에서 제조 강국으로의 도약을 선언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 사이 중국은 규모 면에서는 이미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관심의 초점은 얼마나 많이 만드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높은 품질로 만드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이번 세계제조업대회 역시 고품질 발전을 강조하는 15차 5개년 계획과 맞물려, 규모 확대보다 과학기술 혁신과 제조업 고도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중국제조’가 ‘중국 스마트제조’로 전환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붓으로 글씨를 쓰고, 꽃을 꽂고, 링 위에서 주먹을 겨누는 로봇들은 아직 완성형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 미완의 모습 속에서도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었고, 부족한 부분을 집요하게 메워가는 중국의 속도와 추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