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가 충남 아산에 113조원을 쏟아붓는다. 아산시는 공장 인허가에 ‘하이패스’를 깔았다. 그렇다면 공장에서 일할 사람과 협력기업 직원, 그 가족들이 살아갈 ‘도시의 그릇’은 준비돼 있을까.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HBM(고대역폭메모리) 생산시설과 삼성디스플레이의 67조원 투자가 잇따라 실행 단계에 들어가면서 아산의 다음 과제가 주거·교통·교육·의료 등 배후 도시기반시설 확충으로 옮겨가고 있다.
아산시에 따르면 아산의 인구는 이미 40만명을 넘어섰다. 2026년 5월 기준 외국인을 포함해 40만5000명을 돌파했고, 삼성디스플레이가 자리 잡은 탕정은 4만8000명을 넘어섰다. 아산시는 현재 추진 중인 공동주택과 도시개발, 생활·문화시설이 완성되면 탕정만 인구 10만명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113조원 투자가 현실화되면 이런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21개 지구에 9만1404세대 주택 공급 ‘큰 판’은 깔렸다
우선 주택 공급의 절대적인 계획 물량은 상당하다.
현재 아산에서는 공공 6곳과 민간 15곳 등 21개 도시개발지구, 1182만㎡에 9만 1404세대 규모의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핵심은 탕정이다. LH가 추진하는 탕정2지구는 357만㎡에 2만1035세대를 공급하는 중부권 최대 규모 도시개발사업이다. 2032년 7월 준공을 목표로 한다. 탕정2지구를 포함한 공공 도시개발사업만 6개 지구, 667만㎡에 4만6472세대다.
배방읍 휴대리에서는 천안아산역과 가까운 배방휴대지구 59만 4000㎡에 4626세대가 들어선다. 2029년 준공 목표다.
원도심권도 움직인다. 모종샛들지구는 57만 5728㎡ 규모로 조성 중이고, 풍기역지구는 68만여㎡에 신설 예정인 수도권 전철 풍기역을 끼고 개발된다. 풍기역지구에는 우선 860세대 규모의 임대주택용지도 마련돼 있다.
여기에 충남개발공사가 추진하는 방축지구는 98만㎡에 9211세대, 둔포센트럴파크는 52만㎡에 4214세대 규모다.
최근에는 삼성 투자 기대감으로 한동안 멈춰 있던 민간개발도 다시 움직이고 있다. 배방창터지구와 신인지구 등이 착공 준비에 들어갔고, 일부 사업장은 금융권과 PF 조달을 다시 협의하고 있다. 산업단지 주변 지식산업센터의 입주와 기업체 숙소 임차수요, 공동주택 거래에도 회복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아산시의 최근 분석이다.
◇문제는 ‘몇 채’보다 ‘언제’짓느냐 삼성의 시계와 도시의 시계 맞아야
그러나 9만1404세대라는 숫자만으로 정주여건이 충분하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삼성의 투자는 이미 공장 착공 단계로 접어들었지만 주요 도시개발사업의 완성은 수년 뒤다.
배방휴대지구는 2029년, 탕정2지구는 2032년까지 사업이 이어진다. 방축지구도 계획대로 진행돼야 2028년 착공한다.
하지만 전국적인 건설경기 위축 속에 금융권이 도시개발사업이나 산업단지 조성, 아파트 신축 등 부동산 관련 대규모 대출인 PF(project financing)대출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주택공급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을 낳고 있다. 따라서 관건은 ‘공급 총량’보다 ‘공급 시차’다.
삼성과 협력기업의 인력 유입 속도가 주택과 교통·교육·생활SOC 확충 속도보다 빨라질 경우 특정 지역의 주거비 상승이나 출퇴근 교통난, 학교 과밀 같은 성장통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특히 탕정·배방은 이미 급격한 인구 증가에 대응해 교통·교육·생활 인프라 확충이 진행되는 지역이다. 아산시는 탕정2고와 탕정7초, 복합커뮤니티센터와 한들물빛도시 복합체육문화센터 등을 추진하고 있다. 탕정2고는 45학급, 약 1169명 규모로 계획됐다.
◇산업단지도 동시다발…기업 담을 그릇 키운다
주거도시만 커지는 것은 아니다.
아산에서는 인주3공구와 염치, 스마트밸리 확장, 아산디스플레이시티2, 탕정테크노, 아산디지털 확장, 케이밸리아산, 신창, 선장그린컴플렉스 등 다수의 일반산업단지가 조성 중이다.
아산시가 집계한 2025년 말 기준으로는 조성 중인 산업단지가 11곳, 약 796만㎡이고 계획 중인 산업단지도 6곳, 약 385만㎡에 달했다. 삼성 공장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소재·부품·장비 협력기업까지 받아들일 산업용지를 동시에 확보하는 구조다. 삼성 113조원 투자가 추가 협력기업 유치로 연결될 경우 이들 산업단지가 배후 생산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도로·철도는? ‘직주근접 도시’ 만드는 게 숙제
교통망도 확충되고 있다.
아산은 KTX·SRT 천안아산역과 수도권 전철 1호선을 갖추고 있고, 아산~천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수도권과 충청권 접근성이 개선됐다. 여기에 KTX 천안아산역 광역복합환승센터 개발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탕정2지구와 국도 43호를 연결하는 도로도 2029년까지 추진되고 있으며, 풍기역지구는 신설 예정인 전철역과 아산현충사IC를 활용한 직주근접 주거지로 개발된다. 하지만 삼성의 대규모 투자가 탕정·배방을 중심으로 집중되는 만큼 향후 출퇴근 교통량 증가를 기존 도로망이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결국 ‘집을 많이 짓는 도시’에서 ‘직장과 집, 학교와 병원, 교통이 함께 움직이는 도시’로 전환하는 것이 아산의 숙제다.
◇40만 도시인데 의료는 아직 숙제
의료 분야는 아산 정주여건의 약점으로 꼽을 만하다.
천안시에 순천향대의대병원과 단국대의대병원이 있지만 아산에는 아직 상급종합병원이 없다. 이를 보완할 핵심 시설이 국립경찰병원 아산분원이다.
아산시는 경찰병원 건립을 비롯해 교육·의료 인프라 확대를 50만 자족도시의 핵심 기반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만 병원 역시 건립사업인 만큼 삼성 투자에 따른 단기적인 인구 증가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니다. 산업 성장 속도와 의료 등 생활 인프라 완성 속도의 간극을 줄여나가야 할 숙제가 있다.
◇113조 투자, 이제 ‘공장 하이패스’에서 ‘도시 하이패스’로
아산시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삼성 113조원 투자 발표 직후 출범시킨 ‘삼성 투자 행정지원 추진단’에 인허가와 기업지원뿐 아니라 도시개발·교통·정주여건 관련 부서를 모두 참여시켰다. 도로와 교통, 전력은 물론 유입 인구를 위한 교육·문화·체육·주거까지 함께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의 공장 인허가 기간을 통상 10개월 이상에서 3개월로 줄였던 ‘하이패스 행정’을 이제 배후도시 건설에도 적용해야 하는 셈이다.
삼성 113조원은 아산에 전례 없는 성장 기회다. 하지만 기업이 투자했다고 곧바로 자족도시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9만여 세대의 주택계획과 10여 개 산업단지라는 ‘양적 그릇’은 이미 준비되고 있다. 이제 승부는 그 그릇을 삼성의 투자 속도에 맞춰 얼마나 빨리 완성하고, 도로·학교·병원·문화시설까지 함께 채워 넣느냐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