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사무국장(전무)은 우리 경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을 설명하며 반도체 기술유출은 곧 우리의 경쟁력, 나아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술탈취로 인해 경쟁국과의 기술격차가 좁히거나 기술력 역전이 벌어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면서 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스파이 가중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산업스파이법)의 조속한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를 경기 성남 판교에 있는 협회 사무실에서 지난 8일 만났다.
―산업스파이법안을 평가한다면.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보호해야 할 대상을 좀 더 넓고 깊이 있게 다룬 법안으로 판단된다. 처벌의 수위도 기존의 다른 법률보다 높다. 법이 있다고 해서 범죄가 사라지진 않지만, 이렇게 체계적인 법적 안전망이 마련된다면 기술유출 범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법에 대한 협회의 공식 입장은.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은 한마디로 기술경쟁이다. 이런 환경에서 기술유출은 우리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핵심 원인일 수밖에 없다. 반도체 기술은 우리가 세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후발주자의 맹추격이 위협적이다. 경쟁국과의 기술격차를 단숨에 좁히는 기술유출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산업스파이법은 반드시 필요하고, 국회에서 이 법을 추진하는 것을 환영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기술탈취의 심각성은.
“삼성전자든 SK하이닉스든 제품 개발에 나설 땐 처음부터 시작한다. 거기엔 시간과 비용, 기업이 피땀 흘려 확보한 경쟁력이 투입된다. 그런데 도둑맞은 기술이 경쟁국, 경쟁기업에 들어가는 순간 그곳에서 우리와 똑같은 제품이 생산된다. 더 위험한 것은 도둑질해 간 기술을 발판 삼아 개발된 신기술이 우리의 경쟁력을 넘어서는 경우다. 이러면 우리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농담 같은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럼 정말 억울하지 않겠나.”
―경쟁국에 역전당하면 우리가 재역전할 수 있나.
“그건 어렵다고 본다. 경쟁기업은 기술 개발에 쏟아부었어야 할 역량을 기술 도둑질 덕에 축적하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훔친 기술에 안주하지 않는다. 해당국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기술 개발 속도를 더욱 높일 것이다. 그래서 한 번 추월당하면 다시 추월하기는 어렵다.”
―우리 반도체 기술이 경쟁국에 역전된다면.
“올해 기준 반도체 수출액이 4천억달러 이상으로 전망된다. 반도체만 따져도 그 정도다. 전체 수출액은 1조달러로 전망되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수출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0%를 차지한다. 그런데 기술유출로 들어오던 외화가 안 들어온다고 생각해보라. 환율과 물가가 치솟고, 국민생활에 직접적 악영향이 갈 것이다. 반도체 경쟁력 상실로 인한 국가경제의 피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볼 수 있다.”
―기술유출로 인한 반도체업계의 피해 규모는.
“추산하기 어렵다. 연구·개발(R&D) 비용과 잃어버린 시장기회를 합산하기가 쉽지 않다. 여러 제조 기술 중 하나를 개발하는 데 약 1조원이 든다고 보자. 그런데 기술을 훔쳐가는 데 필요한 비용은 그보다 훨씬 적지 않겠나. 훔친 쪽은 그만큼 비용을 절감한 것이다. 절감한 예산으로 다른 R&D를 하고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시장점유율은 줄게 될 것이고, 피해는 수십조원에 달하지 않을까 싶다.”
―각 기업이 ‘문단속’을 잘하면 어떨까.
“문단속 잘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나 빈틈이 존재한다. 법이 견고하다고 해서 위법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술 유출범들은 늘 빈틈을 파고든다. 이들의 범죄 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도 법이 필요하다.”
―산업기술보호법 등 기존 법률로는 부족한가.
“기존 법률이 있어도 기술유출이 줄지 않았다. 기술 유출범 입장에선 ‘적발돼도 처벌을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다. 설령 소송까지 가서 처벌받더라도 경제사범으로 분류돼 이미지 타격이 덜하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 산업스파이법은 기술유출 행위를 경제안보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유출범을 경제안보 사범으로 본다. 따라서 이 법이 제정되면 기술 유출범들도 범행을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안 통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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