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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칼럼] 정책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서울 외곽 집값 상승 ‘평탄화’라니
본질 호도하는 인식의 오류 심각
설익은 정책 남발 불신·혼란 가중
‘시장 이긴다’는 오만부터 버려야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서울 강남 집값이 떨어지고 서울 외곽의 매매·전세가가 급등하는 현상을 ‘평탄화 과정’이라고 했다. 토목용어까지 써가며 현 상황이 정상화로 가는 과정임을 강조하려는 선의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실제 9월 셋째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13% 올랐다. 85주 연속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역대 최장 상승 기간과 같아졌다. 다만 이 기간 강남구와 서초구는 각각 0.42%, 0.37% 하락했다. 직전 조사와 비교해도 하락폭이 커졌다. 송파도 0.14%로 내렸다. 언뜻 평탄화로 보일 법하다.

전세 문제도 언급됐다. ‘전세는 여전히 사라져야 할 제도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 대통령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 내가 언제 사라져야 한다고 했냐?”고 반박했다. 지난 6월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당시 정확한 워딩이 “(전세는) 이제 사라져 가는 추세”라고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상황임을 고려하면 전세도 조만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지 모른다.

김기동 논설실장
김기동 논설실장

하지만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심각한 인식의 오류다. 서울 강남 집값이 수억씩 떨어져도 돈 없는 실수요자에겐 ‘그림의 떡’이다. 어차피 현금부자들만의 리그가 된 지 오래다. 오히려 진입 장벽이 낮았던 외곽 집값이 급등하자 실수요자들이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자칫 지금이 아니면 내집 마련이 어려워진다는 조급함에 신·구축, 소형·대형을 가리지 않고 매수에 나서야 할 처지에 내몰렸다. 시장은 평탄화가 아닌 ‘키맞추기’ ‘풍선효과’라고 해석한다.

전세대란도 심각하다. 입주 물량 급감과 실거주 중심 정책이 맞물리면서 지난달 14일까지 서울 아파트 전셋값 누적상승률은 7.79%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1.66%)의 4.7배에 달한다. 전세난이 극심했던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도 8월 기준 6억원을 넘었다. 대출과 세제, 거래 규제가 겹치면서 실수요자 일부가 전·월세 시장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임대차 시장의 수급 불안이 커지고, 전세 매물이 귀해지면서 가격이 뛰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현실과 동떨어진 부동산 관련 발언이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 지 오래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충격을 주택시장의 평탄화로 파악하고 있다는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투기를 잡겠다는 농지 전수조사 역시 탁상행정이자 교조적 접근일 뿐이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맞다.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1항에도 명시돼 있다. 하지만 방향성이 틀렸다. 농업은 식량 안보를 넘어 환경보전을 떠받치는 중대한 산업이다. 저출산·고령화라는 현실도 배제됐다. 농지 전수조사는 농지 소유 여부보다는 누가 농사를 짓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설익은 정책을 충분한 예측과 사회적 합의 없이 일단 ‘던져 놓고 보자’식 행태는 시장 왜곡만 부추길 게 뻔하다. ‘자산 격차 감소’라는 명분이 서민의 주거 사다리를 무너트리고, 무주택 청년과 서민의 상실감만 키우고 있다. 자칫 국정 운영의 위험신호로도 읽힐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부동산, 세제, 농지 등 수천만 국민의 생계와 자산, 삶과 직결된 정책일수록 ‘예측 가능성’이 생명이다. 투기를 잡으려다 서민의 주거 사다리까지 걷어차서는 안 된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 정책을 평가할 때 가장 큰 실수는 ‘결과’가 아닌 ‘의도’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일련의 정책적 혼란을 정확히 관통한다. 합리적 반론과 우려를 ‘기득권’ ‘투기세력’으로 규정하는 순간 비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턱대고 전세를 ‘나쁜 사금융’으로 규정하고, 비거주 1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국가정책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부터 집과 땅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시장을 이기려는 오만을 버리고,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정당화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