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기 광명시에 사는 자영업자 박모(70)씨는 지난해 5월 ‘수원지검 박 검사’를 사칭하는 피싱범으로부터 “범죄에 연루됐으니 모든 자산을 조사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에 박씨는 집을 담보로 사채를 쓰거나 가족들에게 빌려 어렵게 마련한 8억5000만원을 피싱범이 지정한 계좌로 이체했다. 박씨가 이체한 돈은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와 연결된 은행 계좌로 이체됐다. 박씨는 사기임을 뒤늦게 깨닫고 신고했지만 은행 계좌에는 남은 돈이 없었고 피해금이 거래소로 넘어갔는지 모른 채 회수를 포기했다.
#2. 제주도에 사는 자영업자 김모(56)씨는 지난해 6월 ‘주식 전문가’를 사칭하는 피싱범으로부터 “지정된 계좌로 투자금을 입금하면 해외 선물 거래로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김씨는 배우자 암 진단비로 받은 300만원을 피싱범이 지정한 계좌로 이체했다. 이 돈은 다시 가상자산 계좌와 연결된 은행 계좌로 이체됐다. 김씨는 자책감과 허탈감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피해금 회수를 포기했다.
그러나 경찰은 피해자들조차 포기한 피싱 피해금을 끝까지 추적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수사대는 2023년 9월부터 이달 15일까지 박씨와 김씨 같은 피해자 1137명에게 263억여원의 피싱 피해금을 환급했다고 29일 밝혔다.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5대 가상자산 거래소 계정에 동결된 채 환급되지 못하고 있던 피해금 대부분이다.
경찰은 2023년 3월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와 피싱 피해 방지를 위한 다양한 대응책을 협의하던 중 거래 정지된 가상자산 계정에 있는 거액의 피해금이 피해자에게 환급되지 못한 채 동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피싱범죄 등 사기 피해금이 은행 계좌로 이전된 경우 사기 피해신고가 접수됨과 동시에 해당 계좌나 연결 계좌 모두 지급이 정지되고, 은행 간 정보 공유를 통해 피해금이 보관된 최종 금융회사가 피해자에게 피해금을 환급한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피해금이 이전되는 경우, 거래소도 직전 은행으로부터 피싱범죄 피해금이 거래소 계좌로 입금된 사실을 통지받고 계정을 자체 약관에 의해 동결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에 대한 정보는 은행으로부터 제공받지 못해 동결된 자금을 환급하지 못했다. 2017년부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5곳이 피싱범죄로 인해 동결한 계정은 1050개, 미환급 피해금은 263억7000만원에 달했다. 이에 경찰은 가상자산 거래소 전자지갑 1050개와 은행 계좌 16만3000개에 대한 자금 추적을 통해 피해자를 특정하고, 가상자산 거래소와 해당 정보를 적극 공유해 환급 절차를 진행했다.
심한 자책감으로 가족들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자살까지 마음먹었다는 박씨는 피해금 중 4300만원을 돌려받고 “이제야 조금이나마 살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도 경찰의 도움으로 피해금 중 230만원을 돌려받아 “경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법률적·제도적 문제로 인해 해결되고 있지 못하던 피싱범죄 피해금 환급 문제를 3년간 끈질기게 추적하고 가상자산 거래소와 협력을 통해 해결한 사례다. 다행히 올해 10월1일 시행되는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금융회사’에 가상자산사업자를 포함해 은행과 거래소 간 정보 공유 및 피해금 환급 문제는 해결될 전망이다.
한편 경찰은 최근 동결 기간 경과로 인해 출금 차단이 해제되자 피해금 30억4000만원이 임의로 처분된 사례를 발견하기도 했다.
2024년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가상자산사업자는 자금세탁행위 등 범죄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2개월(2회 연장, 최대 6개월) 범위 내에서 입·출금을 차단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 그런데 법 시행 후 거래소에서 보관하고 있던 피해금에 대한 최대 동결 기간(6개월)이 지나자 이런 사실이 계정 명의자에게 통지됐고, 피해자에게 환급돼야 할 피해금이 임의로 처분된 것이다. 경찰은 이에 대해 “거래소로부터 통보받은 계정 명의자 130명에 대해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며 “철저한 수사 및 기소 전 몰수·추징보전을 통해 피해금이 환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