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겠습니다.”
29일 서울 중구 덕수궁 일대. 관람객들 사이로 안내음이 먼저 길을 냈다. 같은 말이 영어로, 중국어로 반복됐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본 관람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양옆으로 비켜섰고, 휴대전화 카메라 여러 대가 네 바퀴로 구르는 로봇을 따라 돌았다.
AI 순찰 로봇 ‘순라봇’이다. 국가유산청은 지난달 21일부터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는 ‘AI 순찰로봇 실증사업’의 일환으로 순라봇을 현장 검증하고 있다. 올해 2월부터 두 달간 창덕궁에서 시범 운영한 데 이은 후속 실증이다. 평탄한 덕수궁에는 네 바퀴 로봇이, 경사와 비포장 구간이 있는 고양 서오릉에는 두 다리 끝에 바퀴가 달린 로봇이 각각 투입됐다. 서로 다른 지형에서 주행 성능과 감지 기능을 비교 검증하기 위해서다. 이름은 조선시대 밤길을 돌며 도성을 살피던 순라군에서 따왔다.
순라봇의 근무는 두 교대다. 낮에는 온열질환이나 낙상 등으로 쓰러진 관람객과 화재를 탐지하고, 관람객이 빠져나간 야간에는 화재와 침입자를 살핀다. 일반·열화상 카메라와 AI 영상분석 기술로 이상 상황을 실시간 감지하고, 관제상황실과 연계해 안내·경고 방송도 한다. 3~4m 밖 열기는 5초가 안 돼 관제센터로 전해진다. 실증은 오는 11월까지 이어진다.
이날 순라봇은 정해진 구역을 따라 궁 안팎을 돌았다. 로봇이 지나가자 멈췄던 발걸음들이 다시 움직였다. 돌담 쪽으로 멀어지는 몸체 뒤로 안내음이 한 번 더 세 나라 말로 이어졌다. 순라군이 돌던 길을, 이제 바퀴가 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