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력망 신설 없이도 전기 수용 용량을 대폭 확충하는 구상을 내놓았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어제 발표한 전력망 혁신 대책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접속 확대로 전력망 수용 용량을 119기가와트(GW·송전 기준)에서 171GW로 늘리는 게 핵심이다. 기존 전력망에 태양광 발전소를 더 많이 연결하고, 낮에 몰리는 태양광 전기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 담아뒀다가 밤에 내보내는 방식이다. 기존 망의 효율을 높이는 처방도 필요하지만 이런 정도로 폭주하는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당장 호남반도체 등에 지역 내 재생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확 넓어진다. 다음 달 1일부터 호남권에서 그동안 수용 용량 포화로 접속을 차단했던 계통관리변전소 지정이 해제된다. 대기 중인 사업자는 우선 접속이 허용되며 내년 1월부터는 출력을 제어하는 ‘유연접속’과 ESS를 활용해 신규 사업도 가능해진다. 충청·강원 지역도 순차적으로 유사한 조치가 이어진다. 하지만 접속이 많이 허용될수록 발전량이 몰리는 시기에 발전소 출력을 강제로 줄일 수밖에 없고 비용도 불어난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5년간 재생에너지 급증에 따른 전력 불안정 여파로 원전 가동을 줄여 입은 손실이 1000억원을 웃돈다. 태양광·풍력 등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하고 간헐성도 커 24시간 365일 쉼 없이 가동해야 하는 반도체공장과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에 적합지 않다.
지역 간 전력 불균형도 여전히 난제다. 호남 등 지방에서 전력을 쥐어짜도 전력소비가 많은 수도권 용인 반도체 등에 전달하는 ‘장거리 송전선로’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 전국 주요 송전망 사업 31개 중 제때 준공된 사례가 5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와 주민 반발에 수년째 허송세월하고 있다. 동해안 수도권 송전망은 2019년 준공이 목표였지만 아직 공사 중이고 당진화력∼신송산 선로 등도 차질을 빚고 있다.
전력망 확충은 첨단산업의 생존과 국가안보가 걸린 핵심과제다. ESS 활용 등 임시방편이 아니라 신규 송·변전 시설 구축, 전력망 신설과 같은 정공법이 절실하다. 법을 개정해서라도 지자체에 묶여 있는 인허가 권한을 중앙정부로 일원화하고 주민지원·보상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시계를 넓혀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균형을 이루는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 전략을 새로 짜고 신규 원전 건설도 더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이래야 AI발 전력 대란을 피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