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자키=권준영 기자]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동안 노력한 스스로를 믿고 자신 있게 도전하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나선 한국 양궁 대표팀에 건넨 말이다. 대한양궁협회장을 맡고 있는 정 회장은 대회 현장을 직접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한국 양궁의 도전을 응원했다.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 중앙종합공원 다목적광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양궁 경기장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카자키=대한양궁협회
정 회장은 29일 일본을 찾아 컴파운드 남녀 대표 선수와 코치진을 만났다. 현대차그룹과 대한양궁협회가 마련한 전용 휴게 공간에서 최용희·김종호·최은규·박정윤·박예린·강연서 선수, 세르지오 팡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과 나고야 지역 명물인 장어덮밥으로 점심을 함께했다.
선수들을 마주한 정 회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여기까지 온 여러분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어 “긴장하지 말고 편안하게 평소 하던 대로 활을 쏘면 된다”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동안 노력한 스스로를 믿고 자신 있게 도전하라”고 당부했다.
30일에는 오카자키 중앙종합공원 다목적 광장으로 직접 이동했다. 오전 열린 컴파운드 여자 단체전을 관중석에서 지켜본 데 이어 혼성 단체전과 남자 단체전도 현장에서 응원했다. 리커브 여자 개인 예선에서는 강채영·오예진·이윤지 등 선수들과 양궁협회 관계자들을 만나 격려했다.
경기를 지켜본 뒤 정 회장은 컴파운드 대표 선수들의 경기력을 돌아보면서도 결과보다 앞으로의 과제를 먼저 짚었다. 그는 “박정윤 주장, 최용희 주장, 선수들 모두 너무 다 잘 싸워주셨다”며 “컴파운드 종목은 인도가 워낙 전 세계적으로 강팀이고 저희도 열심히 쫓아가고 있는데 더 많이 좀 훌륭한 방법으로 훈련을 잘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이어 “협회가 앞으로 더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정 회장은 메달의 색깔보다 선수들의 도전 자체에 의미를 뒀다. “금메달이든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것 자체로 너무나 영광된 일”이라며 “본인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다”고 밝혔다.
리커브 대표팀을 향한 당부는 더 간결했다. 정 회장은 “오늘 점심때도 봤는데 다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며 “그냥 본인이 본인하고 싸워서 잘 이기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보여준 현장 행보는 현대차그룹과 한국 양궁이 오랫동안 이어온 동행의 한 장면이다.
정 회장은 2005년 대한양궁협회장에 처음 취임한 뒤 2024년 제14대 회장으로 선임되며 6회 연속 회장직을 맡았다. 그보다 앞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1985년 협회장에 취임하면서 현대차그룹과 한국 양궁의 동행이 시작됐다. 정 회장의 취임까지 이어진 시간을 합치면 현대차그룹과 한국 양궁의 인연은 40년을 넘는다.
그 시간 동안 지원 방식도 달라졌다. 단순히 선수단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자동차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연구개발 역량을 양궁 훈련과 장비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 방식이 오카자키 현지 준비 과정에 고스란히 담겼다.
대한양궁협회와 현대차그룹은 오카자키 경기장을 여러 차례 답사했다. 경기장 구조와 주변 환경은 물론 바람의 방향과 풍속까지 살폈다. 현지에서 어떤 바람이 불고 선수들이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될지를 미리 파악한 뒤 진천선수촌 훈련장에 오카자키 경기장을 재현했다.
선수들은 대회 전 오카자키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일본의 기온과 풍속을 직접 경험했다. 숙소와 훈련장, 경기장을 오가는 이동 동선도 미리 익혔다. 낯선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경기 전에 최대한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경기장 밖도 마찬가지였다. 오카자키 양궁 경기장에서 약 20분 거리에 선수단 전용 숙소를 마련했고, 경기장 인근에는 전용 휴게 공간을 조성했다. 경기 사이 선수들이 편하게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상시 이용 가능한 트레일러도 설치했다.
먹는 것까지 선수별로 달랐다. 사전에 선수들의 기호와 알레르기 여부를 파악해 피해야 할 식재료를 걸러냈다. 일본 현지 한식당과 한국에서 파견한 조리사가 협업해 선수들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식사를 준비했다.
선수 선발이나 경기 운영에 개입하는 대신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훈련한 기량을 온전히 펼칠 수 있도록 주변 환경을 만드는 것. 대한양궁협회가 강조해온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이번 대회에서도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셈이다.
이 같은 지원 방식은 특정 대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파리올림픽에서도 현지 경기장 인근에 선수 전용 휴게 공간과 훈련 시설을 마련하고 경기장의 음향과 방송 환경 등을 훈련에 반영하는 등 현지 적응을 위한 준비가 이어졌다.
40년 넘게 이어진 현대차그룹과 한국 양궁의 동행은 이제 후원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 선수들이 경기장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를 하나씩 줄이는 것이 이들의 지원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