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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李 대통령의 ‘바나나 국정’

중요 이슈마다 다양한 원인 있으나
편견적 인식 근거한 ‘정답’ 강요 빈번
공직사회 경직화·외국과 갈등 자초
언행·SNS 게시물 더욱 신중해야

이재명정부 출범 초기인 지난해 9월 기이한 국무회의를 목격했다. TV 생중계 화면에서 이 대통령이 사과·배 가격 상승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바나나값 문제를 제기하더니 집요하게 추궁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치, 환율을 가격 상승 원인으로 설명하자 이 대통령은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내가 추측하는 이유는, 정확히 과학적으로 분석된 것은 아닌데, 정부 통제 역량의 상실이다. 물가라는 것이 담합 가능성이 크잖아요? (중략) 정부가 제대로 통제, 관리, 개입하면 상당 정도 완화될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고삐를 놔주면 담합·독점을 하고 횡포를 부리고 폭리를 취한다”, “조선 시대 때도 매점매석한 사람을 잡아 사형시켰다. 이런 문제를 통제하는 것이 정부”라는 발언에서 실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문제는 바나나 가격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통 구조뿐 아니라 작황, 환율, 관세, 검역체계, 운송 거리와 운임, 자유무역협정(FTA) 여부, 대체 수출국 존재 여부, 거래 방식과 계약 규모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미 바나나 가격 상승을 유통 업체 담합의 결과로 추정하면서 물가 폭등 배경을 설명하곤 했다. 송 장관에게 바나나 가격 상승 이유를 물었으나 이미 ‘답’은 정해져 있던 셈이다.

김청중 논설위원
김청중 논설위원

대통령이 관심을 두니 공직사회도 초점을 바나나에 맞출 수밖에 없다. 관세청은 할당관세(한시적 관세인하) 악용 행위에 대한 특별단속결과를 발표하면서 바나나 수입상 적발 사례를 강조했다. 한·필리핀 정상회담 후엔 필리핀 대통령이 “바나나 수출로 상호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소개되기도 했다.

‘바나나 국정’. 현상(現象)의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을 무시하고 단편적 사고로 결론 내린 입장을 밀어붙이는 국정 운영 스타일을 뜻한다. 쉽게 말해 뇌피셜에 근거한 국정 운영이다. 필자가 만든 말이다. 민심의 거센 역풍을 불러온 부동산 대책, 주식시장 정책, 농지 전수 조사 등이 ‘바나나 국정’의 대표 사례다.

자잘한 것도 부지기수다. 정부 업무보고에선 대통령이 장관도 아닌 부처 산하 기관장을 쥐 잡듯이 잡는 광경을 종종 본다. 과거엔 TV로 공개되지 않았으니 생경하다. 최근 ‘한국관광공사 때리기’도 일례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관광 회사가 해야 하는 일 아니냐”며 관광공사 해외지사의 관광객 유치 활동을 문제 삼았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우리나라 기관의 해외지사가 너무 많아서 하는 말”이라고 일반론인 듯하면서도 관광공사를 콕 짚어 업무성과 평가를 장관에게 지시했다. 관광공사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가 법에 규정된 주요 임무로 K관광 저변 확대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그럼에도 편견 다분한 지적에 정부 부처들에게 물어뜯길 운명에 처했다.

대통령 인식이나 발언에 정부 부처나 산하 기관이 반론하기는 힘들다. 대통령이 항상 옳아서가 아니라 조직과 구성원 장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기침하면 정부 부처, 산하 기관은 독감에 걸린다.

‘바나나 국정’은 대외 관계에도 투영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캄보디아,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내용을 올려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번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북한군 포로 송환 공개와 관련해 “많이 아쉽다”고 적은 뒤 양국 공방이 증폭하고 있다. 도대체 국가안보실, 외교부는 무엇을 하길래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외 메시지를 연발하도록 하나. 대통령 말 한마디에 초긴장하는 정부 부처나 관계 기관이 아니라 상대가 동등한 주권 국가들이라 호락호락하지 않다. 앞으로 우리 국민에게 미칠 후유증은 클 것이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의 대외관(對外觀)에도 흑백론이나 선악관에 근거한 결론이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대통령이 국내외 이슈에 본인이 옳다고 믿는 입장을 정답인 양 표방해 공직사회의 경직성을 가져오고 대외 갈등을 키울 이유는 없다. 언행과 SNS 게시에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