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파이 그리는 남자는 버려.” 1960년대 초 추상표현주의 거장 바넷 뉴먼은 웨인 티보(1920∼2021)의 전시를 준비하던 뉴욕 미술상 앨런 스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당시 뉴욕 화단을 휩쓴 것은 거대한 화면에 감정을 쏟아내던 추상표현주의였다. 케이크와 파이, 아이스크림을 가지런히 늘어놓아 그리던 티보는 당시 미술계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1962년 앨런 스톤 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첫 뉴욕 개인전은 매진됐다. ‘파이 그리는 남자’는 훗날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가 됐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31 웨인 티보 전’은 달콤한 디저트 정물로 익숙한 티보의 얼굴을 한꺼풀 벗겨낸다.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으로, 초기작부터 100세에 그린 마지막 자화상까지 약 75년에 걸친 회화와 드로잉 105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장 초반의 디저트와 샌드위치 그림 앞에서는 왜 그가 ‘케이크 화가’로 기억돼 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케이크 위에는 실제 생크림을 올린 듯 물감이 두껍게 쌓였고, 파이와 아이스크림에는 검은 그림자 대신 파랑과 주황, 보라를 겹쳐 칠해 사물의 윤곽이 빛을 받아 아른거린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 달콤한 표면 뒤에 숨은 ‘질서’를 들여다본다. 삼각형의 파이 한 조각과 원기둥의 케이크. 진열대 위 사탕과 구두 역시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사물의 질서’에서 전시 제목을 가져온 이유다. 티보는 친숙한 사물을 그리면서 그 안의 선과 면, 간격과 배열을 끊임없이 들여다봤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디터 부흐하르트와 안나 카리나 호프바우어 큐레이터는 “티보는 질서를 매개체로 삼아 그 안에서 피어나는 변주 또는 차이를 그렸다”며 “티보가 본질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추상적인 작가였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질서는 인물화에서도 이어진다. 전시장에 나온 1963년작 ‘음식을 먹는 인물들’에서는 사람들이 가까이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 시선을 나누지 않는다. 진열대의 파이처럼 각자의 공간에 고립돼 있다. 티보가 말한 ‘외로운 함께 있음(lonely together)’이다. 달고 밝은 미국의 풍요를 그린 화면에서 이상하리만큼 쓸쓸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다.
도시 풍경에 이르면 ‘케이크 화가’라는 이미지는 더 크게 흔들린다. 샌프란시스코의 도로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만큼 가파르게 솟고 건물은 기하학적인 면으로 바뀐다.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옮기는 대신 기억 속 도시를 해체해 다시 조립했다. 케이크와 구두에서 시작한 선과 면의 질서가 도시 전체로 확장된다.
전시장 마지막에는 2020년 그린 ‘백 살 광대’가 놓였다. 생전 자화상을 여럿 남겼던 티보는 100세가 된 자신을 늙은 광대의 모습으로 남겼다. 화면 밖으로 걸어나갈 듯 몸을 돌린 노인의 모습은 티보가 남긴 마지막 자화상이다. 그는 이듬해 101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시는 2027년 2월21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