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미·중 정상 “우린 2차대전 전우”… 둘리틀 특공대 관심 ↑

도쿄 폭격 후 중국 착륙한 ‘둘리틀 특공대’
중국에 미군 690명 유해 있는 것으로 추정
실종 미군 장병 수색 작업에 탄력 붙을 듯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의 워싱턴 정상회담은 ‘겉만 번드르르하고 정작 알맹이는 없는 행사’라는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두 정상의 갈등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끝난 것 자체가 성공적이란 평가 또한 있다. 특히 트럼프와 시진핑 둘 다 미·중 양국이 2차대전 당시 동맹이었다고 인정하며 과거사에 대한 공감대를 넓힌 점은 큰 성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도쿄 폭격 후 중국 착륙한 둘리틀 특공대

2차대전 당시 미 육군 항공대 둘리틀 특공대의 활약상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 ‘미드웨이’(2019)의 한 장면. 특공대장 제임스 둘리틀 중령(가운데)이 도쿄 폭격 임무를 완수하고 중국에 착륙한 직후 평범한 주민들이 잔뜩 경계한 채 그에게 접근하고 있다. 당시 미·중 간에는 ‘미군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중국이 구조해 안전하게 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사전 약속이 있었다. SNS 캡처
2차대전 당시 미 육군 항공대 둘리틀 특공대의 활약상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 ‘미드웨이’(2019)의 한 장면. 특공대장 제임스 둘리틀 중령(가운데)이 도쿄 폭격 임무를 완수하고 중국에 착륙한 직후 평범한 주민들이 잔뜩 경계한 채 그에게 접근하고 있다. 당시 미·중 간에는 ‘미군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중국이 구조해 안전하게 미국으로 돌려보낸다’는 사전 약속이 있었다. SNS 캡처

1일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중 관계에 정통한 중화권 전문가들을 인용해 “미군 실종자 수색이 두 나라 간 실질적 협력 분야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는 지난 9월24일 미·중 정상회담 종료 후 중국 외교부가 “미·중 양국 군은 중국 내 미군 실종자 유해 수색 작업에 계속 협력하기로 동의했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2차대전에 앞서 1937년 군국주의 일본의 중국(당시 중화민국) 침략으로 중일 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은 일본에 강력히 항의했으나, 그렇다고 중국을 돕기 위한 대대적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1941년 12월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에 싸움을 건 뒤에야 비로소 미국은 항일 전쟁에 나서며 중국과 동맹을 맺었다.

 

초창기 미·중 동맹의 위력을 잘 보여준 것이 1942년 4월 둘리틀 공습이다. 미 육군 항공대 제임스 둘리틀 중령이 이끄는 폭격기 16대가 태평양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서 발진해 일본 도쿄를 폭격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둘리틀 공습은 일본에 결정적 손실을 입히지는 못 했으나, ‘미 군용기에 도쿄가 뚫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일본군의 자신감을 뒤흔들었다.

2차대전 도중인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연합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장제스 중국 국민당 정부 주석(왼쪽)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당시 중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였다. 카이로 회의는 연합국 전시 외교에서 중국 정부 그리고 장제스가 존재감을 발휘한 첫 사례로 꼽힌다. 방송 화면 캡처
2차대전 도중인 1943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연합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장제스 중국 국민당 정부 주석(왼쪽)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당시 중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였다. 카이로 회의는 연합국 전시 외교에서 중국 정부 그리고 장제스가 존재감을 발휘한 첫 사례로 꼽힌다. 방송 화면 캡처

둘리틀 공습에 동참한 미군기들은 연료 부족 등 문제 때문에 항모로 귀환하는 대신 중국에 착륙하는 길을 택했다. ‘미군 조종사와 승무원들을 중국이 구조해 안전하게 돌려보낸다’는 약속이 미·중 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전에 동참한 육군 항공대원 80명 중 6명이 전사하고 5명은 일본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당시 중국 대륙의 상당한 영역을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은 미군 대원들에게 도움을 줬거나 그렇게 의심되는 중국인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등 가혹한 보복을 가했다.

지난 9월23일(현지시간) 국빈 방문을 위해 미국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미리 공항에 와서 기다리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환영 행사를 참관하고 있다. 이튿날 열린 백악관 공식 환영회에서 트럼프는 시진핑을 향해 “2차대전 당시 미·중 양국이 동맹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지난 9월23일(현지시간) 국빈 방문을 위해 미국에 도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이 미리 공항에 와서 기다리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환영 행사를 참관하고 있다. 이튿날 열린 백악관 공식 환영회에서 트럼프는 시진핑을 향해 “2차대전 당시 미·중 양국이 동맹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실종 미군 장병 수색 작업에 탄력 붙을 듯

 

이후 미국은 고위 장성을 중국에 보내 중국군 훈련을 지원하고 일명 ‘무기대여법’에 따라 중국군에 막대한 양의 군사 물자도 제공했다. 이 같은 임무는 미국 동맹인 영국의 식민지이던 인도에서 출발해 히말라야 산맥 상공을 넘어 중국 남서부에 도착하는 미군 수송기들에 의해 수행됐다. SCMP는 “1940년대 중국에 배치돼 공중 지원, 보급품 수송 등을 담당한 미군 병력이 연인원 12만명을 넘는다”며 “이 기간 실종된 미군 약 690명의 유해가 중국 본토에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중국의 도움 아래 대대적인 실종 장병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전쟁 기간 서로 힘을 합쳤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1946년 국공 내전에 돌입하고 공산당의 최종 승리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일명 ‘중공’)이 수립되며 미군의 실종자 찾기는 난관에 봉착했다.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난 가운데 미국은 중공과 모든 관계를 단절했다. 1971년 유엔 총회가 미국의 반대에도 중공의 유엔 가입을 승인하고 대만을 축출함으로써 중공이 명실상부한 ‘중국’이 되었다. 미·중 수교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979년에야 이뤄졌다.

 

시진핑은 2차대전 종전 80주년인 2025년 “중·미 양국은 대전 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운 맹우(盟友)”라며 “중국은 당시 미국 등 동맹국들의 소중한 지원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도 이에 화답하듯 최근 국빈으로 미국을 찾은 시진핑을 환영하며 “2차대전 당시 미·중 양국이 동맹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시진핑 회담 후 미 백악관과 중국 외교부는 나란히 발표문에 “양국 정상은 미·중이 2차대전 당시 동맹이었음을 회상했다”는 문구를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