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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숙의이매진] 꿈같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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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선선해지면서 바깥 활동이 많아지는 계절이 되었다. 좋은 전시도, 행사도 많아서 예전 같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바쁘게 돌아다닐 상황이었다. 그런데 왠지 최근에는 그럴 의욕이 생기지 않아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쌓아둔 책 정리나 해볼까 하고 책장에 손을 댔는데 정리는 부진한 채로 책 읽는 재미에 빠졌다.

책을 사두기만 하고 제때 읽지 못하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내게도 독서 습관이 하나 있는데 우연히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하면, 시중에 있는 그 작가의 작품을 죄다 구해 읽는 식으로 독서를 한다. 그러다 보니 새책보다는 헌책을 더 많이 사게 되고 도서관에 있는 책은 도서관에 가서 대출해 읽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연히 발견한 그 작가들은 대문호도 아니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다. 오히려 갑자기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짧은 인생에 비해 많은 수의 작품을 남겼거나, 그냥 사진으로 본 작가의 생김새나 분위기에 끌려 읽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최근에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해 보면 종이책보다는 전자책을 사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이사를 하게 되거나 어떤 이유로든 중간에 책 정리를 한번 하면서 이제 종이책은 사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다고. 운전을 많이 해서 오디오북 구매도 많이 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여태까지 대파나 콩나물을 사는 것과 책을 사는 것은 별개로 생각해왔다. 책은 소비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아서 책을 사는 데 일정한 비용을 계속 쓰는 건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책에 관한 꿈이 있다. 아파서 누워 있는데 내 주변을 책들이 둘러싸고 있고(천장에도 책이 매달려 있다), 나는 그 책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나씩 떠올린다. 어떤 이야기였지,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이었지, 어떤 나라, 어느 도시가 배경이었지 등등을. 결국 죽음은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고 서사 안에 있을 수 없다는 얘기다. 너무 슬프지 않나?

라비 알라메딘의 소설 ‘불필요한 여자’의 주인공인 알리야는 노년의 삶을 번역을 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흘려 보낸다.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아랍어로 계속 번역한다. 그녀는 젊었을 때 책방에서 일했고 책으로, 번역으로 인생을 쌓았다. 알리야가 부럽다. 나도 번역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계속해서 읽고 싶은 책을 살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 이야기를, 서사를 읽을 수 없다면 그 불행의 정도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계속 책을 사기 위해 일해야 하고 그 책들이 내게 사람을, 도시를, 기적을 전달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강영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