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가 2000년에 걸친 한국의 창의성과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저녁 영국 런던에 위치한 영국박물관. 이건희(KH) 컬렉션의 세 번째 순회전이자 대규모 한국 미술 전시회인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 개막을 기념하는 갈라 행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렇게 당부했다. 앤 공주 등 영국 왕실 및 정·관계 인사와 크리스토프 푸메 ASML 최고경영자(CEO), 카이 베크만 머크 CEO 등 글로벌 기업 경영진, 문화계 주요 인사 등 240여명 참석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는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가 사람들도 함께했다.
1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2027년 1월31일까지 영국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로 KH컬렉션을 중심으로 한국 문화와 예술의 오랜 역사와 창의성을 소개하는 특별전이다. 고대 금속공예와 불교미술부터 고려청자, 조선시대 회화·공예, 근현대 미술까지 시대별 작품을 통해 한국 예술이 오랜 시간 변화하고 발전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영국박물관에서 1984년 이후 42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한국 미술 전시회다. 이 회장은 먼저 행사에 참석한 마이크 로씨를 포함한 6·25전쟁 참전용사 3명은 물론 지난 7월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을 찾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추모한 앤 공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어 “저희 가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예술과 문화는 보존하고 함께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며 3대에 걸친 삼성가의 철학도 꺼냈다. 할아버지인 이병철 창업회장이 후대에 전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문화유산 수집을 시작했고, 아버지 이건희 선대회장은 소유가 아닌 보존을 위해 평생 작품을 모았다고 했다. 또 어머니 홍 명예관장은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컬렉션을 키웠다고 소개했다. 조지 오스본 영국박물관 이사회 의장은 “(이 회장) 선대회장과 가족들의 헌신은 미래를 내다보는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 회장은 행사장에서 반도체 핵심 관계자들과도 만남을 가지며 ‘민간외교관’으로서 존재감을 뽐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오너가가 직접 나서 순회전 행사를 주재하며 공을 들인 결과, (이건희 컬렉션 행사는) 단순 전시회를 넘어 한국을 알리는 ‘문화보국’ 행사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갈라 행사가 민간외교의 마당이었다면 KH컬렉션 전시회는 한국 문화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세계에 알리는 ‘문화 한류’의 가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앞서 KH컬렉션 순회전은 미국 워싱턴과 시카고에서 열렸는데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시작된 첫 해외 순회전에는 약 8만명이 방문해 최근 10년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중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했다. 관람객 만족도 조사에서도 최근 15년간 열린 전시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담당 큐레이터가 주요 작품과 전시 의미를 소개한 영상은 조회수 100만회를 넘어서며 최근 10년간 박물관이 제작한 영상 중 최다 시청 기록을 세웠다.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열린 시카고 전시에는 워싱턴보다 40% 이상 늘어난 약 11만5000명이 방문했다. 미국 두 도시에서만 총 19만5000명이 관람하며 한국 미술의 오랜 역사와 예술적 가치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영국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예상된다. 영국박물관은 연간 600만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인 박물관이다. 특히 영국박물관 측이 특별전에 맞춰 한국 미술 2000여년을 다룬 공식 도록도 선보이는 등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 미술을 보다 깊이 있게 소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미국에서 이어진 관람 열기를 유럽으로 확산시키고, 한국 미술의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세계에 한층 넓게 알리는 무대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