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이후 1949년 출범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한동안 미국·영국 두 나라가 쌍두마차처럼 이끌었다. 2차대전 때 나치 독일과 싸워 이기는 데 양국의 기여가 가장 결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전승국 자격으로 종전을 맞이했으나 미·영은 그 공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1940년 독일의 공격을 받고 불과 6주일 만에 항복한 프랑스는 솔직히 승전국이라고 부르기 애매했다. 1945년 5월9일 연합군에 대한 무조건 항복 문서에 서명하던 빌헬름 카이텔 독일군 원수가 자유프랑스군 대표를 보고 “저들도 승자요”라고 물으며 조롱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나토 초창기에는 그럭저럭 대등했던 미국과 영국 관계는 시간이 흐르며 기울었다. 갈수록 미국의 국력이 영국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 나토 의사 결정은 미국이 방침을 정하면 영국과 따로 협의한 뒤 다른 회원국들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서방 3대국’의 일원을 자처하던 프랑스는 자존심이 상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이 미·영 양국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드골은 프랑스의 핵무기 개발과 무장이 완료된 뒤인 1966년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 국방’을 외치며 나토 군사 기구 탈뢰를 선언했다.
40여년 뒤인 2009년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프랑스의 나토 군사 기구 복귀를 단행했다. 그 사이 나토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졌다. 프랑스 등 몇몇 나라에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나왔으나 미국은 개의치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은 대놓고 일부 회원국의 ‘안보 무임승차’를 거론하며 방위비 증액을 압박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때는 그 목표치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이었는데, 2기 행정부 들어선 GDP 대비 5%로 치솟았다. 그래도 “동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국이 아예 나토를 탈퇴할 수 있다”는 트럼프의 엄포에 다들 속수무책이다.
미국 국방부가 오는 11월 폴란드에서 나토 회원국 회의를 주재하며 영국, 프랑스, 발트 3국(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일부 회원국에겐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는 외신 보도가 1일 나왔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이를 미 행정부가 작성한 ‘말썽쟁이 및 모범생 명단’(naughty and nice list)과 결부지었다. 나토 맹주인 미국의 요구 사항을 잘 따르는 회원국은 ‘모범생’, 그렇지 않은 회원국은 ‘말썽쟁이’라는 식으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에 고분고분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더라도 나토 역내에서 미국 다음으로 센 군사력을 지닌 영국·프랑스 배제가 과연 나토의 종합적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