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릴 비트를 집어 드릴에 끼우고, 손잡이를 쥔 채 버튼을 눌러 나무에 구멍을 뚫는다. 작은 너트도 손끝으로 돌려 조인다.
작업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다. 이 일을 해내는 손가락은 다섯 개도 아닌 네 개다.
현대차그룹 로봇 전문 계열사 보스턴다이나믹스는 1일(현지시간) 아틀라스에 탑재할 차세대 로봇 손을 공개하고, 이를 활용해 공구와 소형 부품을 다루는 영상을 선보였다. 사람이 쓰는 도구를 쥐고 조작하거나 손 안에서 물체의 위치를 바꾸는 등 산업 현장에 필요한 손기술을 시연했다.
영상 속 아틀라스는 드릴을 잡는 것뿐 아니라 드릴 비트를 끼운 뒤 나무를 뚫는다. 손잡이를 안정적으로 붙잡으면서 버튼까지 눌러야 하는 작업이다. 공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힘을 주되,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은 따로 움직여야 한다.
너트를 조이는 동작은 더 섬세하다. 작고 단단한 부품을 손끝으로 잡아 회전시키면서 방향과 힘을 조절한다. 손 안에서 부품을 고쳐 잡는 능력도 필요하다. 단순히 물체를 움켜쥐는 것과 정밀하게 조립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드럼 스틱과 골프공도 등장한다. 아틀라스는 가늘고 긴 드럼 스틱을 손가락으로 회전시키고, 매끄러운 골프공 두 개를 손 안에서 동시에 움직인다. 모양과 마찰 특성이 다른 물체를 놓치지 않으면서 손가락의 움직임과 접촉하는 힘을 계속 바꾸는 것이다.
이런 손기술의 바탕은 엄지를 포함한 네 손가락에 적용한 총 13자유도다. 자유도는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의 수를 뜻한다. 엄지에 네 개, 나머지 손가락에 각각 세 개의 자유도를 부여해 물체를 집거나 손가락을 벌리고, 손끝 위치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사람처럼 다섯 손가락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는 뭘까. 개발팀도 이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고 한다. 엄지를 하나로 할지 두 개로 할지, 새끼손가락이 꼭 필요한지까지 다양한 설계를 검토했다.
답을 찾는 과정에는 개발자들의 손도 동원됐다. 보스턴다이나믹스가 공개한 개발 일화에 따르면, 최고기술책임자(CTO)의 제안으로 팀원들은 새끼손가락과 약지를 테이프로 붙인 채 하루를 보내며 어떤 일을 할 수 없는지 확인했다. 실험 뒤 개발팀은 새끼손가락을 넣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손가락 하나를 더하면 할 수 있는 동작은 늘어나지만, 구동장치와 부품도 추가된다. 크기와 전력 소모, 비용이 커지고 고장 가능성도 높아진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네 손가락만으로도 공구를 쥔 채 버튼을 누르고, 손 안에서 물체의 방향을 바꾸는 작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교함뿐 아니라 내구성과 수리 편의성, 양산 비용까지 고려한 선택이다.
로봇 손의 크기도 사람이 쓰는 도구에 맞췄다. 사람 손과 유사한 크기를 유지하면서 산업 현장 작업에 필요한 강도를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로봇에 맞춰 공구와 작업 공간을 새로 만드는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다. 주요 부품은 모듈화해 정비와 교체가 쉽도록 설계했다.
손끝에는 ‘촉감’도 더했다. 손가락 끝과 손바닥에 압력 기반 촉각 센서를 촘촘히 배치해 물체와 접촉할 때 생기는 작은 힘의 변화까지 감지하도록 했다. 물체를 정교하게 다루려면 어디를 얼마나 세게 잡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손을 움직이는 기술은 가상환경에서 먼저 훈련한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시뮬레이션으로 학습한 결과를 실제 로봇에 적용하는 ‘심투리얼(Sim-to-Real)’ 방식을 개발 초기부터 활용했다. 실제 손의 움직임과 마찰 특성을 가상환경에 반영해 시뮬레이션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줄이는 방식이다.
훈련 조건도 계속 바꾼다. 모터가 내는 힘과 마찰, 물체의 모양, 작업 중 가해지는 외부 충격 등을 달리하며 강화학습을 진행한다. 일정한 조건에서만 동작을 잘하는 것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마주칠 다양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최근 문을 연 ‘로보틱스 메타플랜트 응용 센터(RMAC)’에서도 아틀라스의 제조 작업 능력을 검증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의 산업 환경을 모사한 이 공간에서 작업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 결과를 확인한다. 현장에서 얻은 데이터를 다시 훈련에 반영하며 네 손가락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을 늘려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