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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단계를 건너뛴 걸까요?…펫로스, 애도 5단계의 오해 [펫 상실학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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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상한 걸까요?”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어떤 분은 “책에서 봤는데, 저는 분노 단계를 건너뛴 것 같아요”라고 한다. 어떤 분은 “아직도 수용이 안 돼요. 제가 애도를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라고 묻는다. 또 어떤 분은 벌써 일상으로 돌아온 자신을 보며 “이렇게 빨리 괜찮아져도 되나요?”라고 걱정한다.

 

다들 머릿속에 같은 그림을 하나씩 그려 두고 있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등 이른바 애도의 5단계다. 이 다섯 단계는 이제 상식처럼 퍼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것을 순서대로 밟아야 하는 계단으로 여기거나, 자기 마음을 채점하는 표로 쓴다. 나는 지금 몇 단계쯤일까. 분노가 없으면 내가 무언가를 건너뛴 걸까. 수용이 더디면 애도를 잘못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자기 슬픔을 남의 눈금에 대 본다.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위해 AI(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제작한 사진. 생성형 AI 이미지 생성
사진은 기사 이해를 돕기위해 AI(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제작한 사진. 생성형 AI 이미지 생성

우리는 이 그림을 드라마에서, 책에서, 누군가의 위로에서 배웠다. 그런데 정작 어디서 나왔는지는 잘 모른다. 그 출발은 사별한 사람의 애도가 아니었다.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1969년 이 틀을 널리 알렸을 때, 그가 주로 다룬 것은 유가족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환자 본인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반응을 설명하려 한 것이지, 남겨진 사람이 밟아야 할 애도의 순서표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퀴블러 로스 자신도 이 단계들이 누구에게나 같은 순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람이 다섯 가지를 모두 겪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애도가 정말 계단처럼 오는지는 오랫동안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2007년 예일 사별 연구진은 자연사로 가족을 잃은 코네티컷 주민 233명의 사별 뒤 1개월부터 24개월까지의 반응을 분석해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발표했다.

 

연구진이 살핀 것은 죽음이 믿기지 않는 감정, 그리움, 분노, 우울, 수용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고전적 5단계의 “부정”과 연구에서 측정한 “믿기지 않음”은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다. 결과는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시간표와 달랐다. 죽음이 믿기지 않는 감정은 사별 직후 가장 지배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수용은 처음부터 가장 자주 나타난 반응이었다. 그리고 사별 뒤 1개월부터 24개월까지 가장 두드러진 부정적 반응은 분노나 우울보다 그리움이었다.

 

그렇다고 이 연구가 애도의 5단계라는 말을 통째로 확인한 것도, 통째로 뒤집은 것도 아니다. 233명의 평균을 보면 죽음이 믿기지 않는 감정은 사별 뒤 한 달 무렵 가장 높았고, 그리움은 넉 달, 분노는 다섯 달, 우울은 여섯 달 무렵 정점을 보였다. 수용은 특정한 달에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감정이 아니라, 관찰 기간 동안 점차 늘어났다. 평균은 하나의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평균의 곡선이 한 사람의 하루를 시간표처럼 정해 주지는 않는다.

 

그리움이 오래, 그리고 크게 남는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그리움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다. 그 자리는 단계를 밟아 통과되는 곳이 아니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살아가는 자리다. 나는 그 다름을 병원에서 자주 봤다. 고양이를 갑자기 보낸 보호자는 먼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어제까지 멀쩡했어요. 불과 5분 전까지 멀쩡했어요.” 그분에게 먼저 온 것은 분노도 우울도 아니었다. 믿기지 않음이었다.

 

아픈 아이를 한 달 반 만에 보낸 다른 보호자는 한참 뒤에 이렇게 말했다.

 

“자책은 이제 더 이상 안 하고 있고요. 그냥 그리워만 하는 시기를 지금 보내고 있습니다.” 단계를 차례로 밟아서 도착한 자리가 아니었다. 애도의 어느 한 감정이 지나간 뒤 다른 감정이 도착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사람은 어떤 날에는 믿기지 않다가, 어떤 날에는 화가 나고, 또 어떤 날에는 아무 일도 못 한 자신을 탓하다가, 문득 깊은 그리움 속에 앉는다.

 

박근필 성장연구소 소장
박근필 성장연구소 소장

5단계가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없던 감정에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같은 말을 붙이면, 내가 겪는 일이 나만의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지도이지 시간표가 아니다. 지도는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을 잠시 살펴보게 한다. 그러나 며칟날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다음에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까지 정해 주지는 않는다.

 

물론 눈여겨봐야 할 신호도 있다. 자연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살핀 예일 연구에서는 부정적 애도 반응이 평균적으로 사별 뒤 약 6개월 안에 가장 높아진 뒤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것도 평균일 뿐이다. 사람마다 슬픔의 속도와 모양은 다르다. 중요한 것은 사별 뒤 몇 달이 지났느냐가 아니다. 슬픔 때문에 일, 수면, 식사, 관계 같은 일상이 계속해서 심하게 무너지고 있는지다. 상실의 고통이 너무 커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애도상담이나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지속성 애도 장애는 일반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잃은 뒤 성인의 경우 최소 12개월 이상 강한 그리움이나 상실에 대한 몰두, 그리고 일상 기능의 뚜렷한 저하가 이어질 때 검토하는 진단이다. 반려동물 사별에 이 진단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보호자의 고통이 도움을 받을 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뜻도 아니다. 그 경우가 아니라면 제대로 슬퍼하는 법이란 따로 없다.

 

단계표에 자기를 맞추려는 순간 애도는 시험이 된다. 분노가 안 오면 무언가 잘못된 것 같고, 수용이 더디면 낙제한 것 같다. 그렇게 슬픔 위에 죄책감이 한 겹 더 얹힌다. 당신의 애도에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 건너뛴 단계도, 늦은 단계도 없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당신의 애도가 있어야 할 자리다. 그것을 남의 눈금에 대고 채점하지 않아도 된다.

 

박근필 성장연구소 소장

 

■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주었고, 그렇기에 더 아픈 이별을 경험한 반려인들을 위해 연재물 김덕용의 ‘펫 상실학 개론’에서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가슴속에 묻어둔 아이와의 추억, 그리고 남겨진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에 참여해 주세요.

 

△참여 대상 :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모든 반려인

 

△작성 분량 : 예) A4 용지 1장 내외 또는 자유 분량

 

△우대 사항 : 아이의 생전 모습을 담은 소중한 사진 첨부

 

△접수 방법 : 이메일(kimd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