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권준영 기자] 한국 양궁의 아시안게임 독주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은 2일 일본 아이치현 오카자키중앙종합공원 다목적 광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김제덕(예천군청)-강채영(현대모비스)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본의 나카니시 준야-아사쿠노 나나미를 세트 점수 5-1(39-35 37-37 37-35)로 꺾었다.
강채영은 이날 두 번째 메달을 수확했다. 앞서 이윤지(현대모비스), 오예진(광주은행)과 호흡을 맞춘 여자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한국의 금빛 행진은 이어지지 않았다. 혼성 단체전에서는 준결승에서 중국에 세트 점수 0-6으로 패해 2회 연속 우승이 무산됐다. 여자 단체전에서는 인도에 3-5로 져 1998년 방콕 대회부터 이어온 8연패가 끊겼다.
한국이 여자 리커브 단체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놓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도는 이 종목에서 사상 처음 결승에 진출해 처음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강채영은 혼성전 이후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10점을 빗나간 화살보다 10점 들어간 화살만 생각하고 경기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바람에 마음이 약해진 것 같아 아쉽다”고 밝혔다.
강풍은 이날 경기의 변수였다. 김제덕도 중국과의 준결승에서 두 차례 7점을 쏘며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김제덕은 경기 후 “선수는 어떤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경기를 해야 하기에 변명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한국을 가로막은 상대는 중국뿐만이 아니었다. 컴파운드에서 먼저 두각을 나타낸 인도가 리커브에서도 한국의 독주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번 대회 양궁 금메달 10개 가운데 인도는 이날까지 컴파운드 남녀 단체전과 혼성전, 리커브 여자 단체전을 합쳐 4개를 가져갔다. 한국의 금메달은 1개다.
인도의 약진은 일부 스타 선수의 돌풍으로만 보기 어렵다. 선수층을 넓히고 양궁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국가와 기업이 함께 투자해온 결과가 이번 대회에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양궁의 경쟁력을 떠받쳐온 요소 가운데 하나도 두꺼운 직업 선수층이다.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올해 전문체육 일반부 등록 선수는 193명이며, 전체 등록 선수는 2천666명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안정적인 생계를 보장받으며 훈련에 집중한다.
인도는 이 구조를 훨씬 큰 규모로 구축하고 있다. 인도의 양궁 등록 선수는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전체 등록 선수의 4배가 넘는다.
군과 철도청, 주 정부, 공기업 등이 스포츠 특기자를 채용해 선수들의 생계를 뒷받침한다. 이번 대회 남자 리커브 에이스 디라즈 봄마데바라는 2021년 입대한 인도 육군 소속으로 육군스포츠연구소에서 훈련한다.
여자 컴파운드 간판 조티 수레카 벤남은 안드라프라데시주 정부 고위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인도 철도청도 정기적으로 양궁 특기자를 뽑는다.
기업의 지원도 선수층을 키우는 기반이 됐다. 철강회사 타타스틸은 1996년 설립한 타타 양궁 아카데미에서 선수를 육성하고 직원으로 채용한다. 국영 전력회사 NTPC는 2018년부터 인도양궁협회를 후원해왔으며, 2023년부터 5년간 11억5천만 루피(약 162억원)를 지원하고 있다.
양궁에 입문할 수 있는 통로를 넓힌 것도 인도의 특징이다. 인도에서는 현대식 리커브 활보다 훨씬 저렴한 대나무 활을 이용한 ‘인디언 라운드’가 양궁 입문의 통로 역할을 한다. 세계양궁연맹에 따르면 현대식 활 세트는 1천500달러가 넘지만 대나무 활은 약 12달러 수준이다.
인도 궁사 상당수가 이 종목으로 기본기를 익힌다. 인도양궁협회는 ‘집집마다 양궁, 마을마다 양궁’을 목표로 내걸고, 취미로 활을 쏘는 동호인부터 엘리트 선수까지 10단계로 나눠 관리하는 피라미드식 육성 체계를 운영한다. 전국 4개 권역 거점센터가 선수들의 등급을 관리한다.
선수층 확대는 경기장 밖에서도 이어진다. 인도는 지난해 세계 최초의 프로 양궁 리그인 아처리 프리미어리그(APL)를 출범시켰다. 오는 8일 개막하는 올해 대회에는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인도 국가대표 12명이 모두 참가한다.
인도가 리커브에서 한국을 추격하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이미 몇 년 전이다.
산지바 쿠마르 싱 당시 인도양궁협회 기술위원장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컴파운드에서 많은 메달을 따냈지만 올림픽 종목인 리커브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제 인도 양궁은 한국의 턱밑까지 왔다”고 말한 바 있다. 3년 뒤 인도는 실제로 아시안게임 리커브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하며 당시 발언을 결과로 보여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