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불감훼상 효지시야(不敢毀傷 孝之始也)”는 ‘효경’에 나오는 말이다.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조선의 남자는 10대 중후반 관례를 치르면서 처음 상투를 튼다. 먼저 얼레빗과 참빗으로 머리를 가지런히 빗고, 잔머리 한 올도 빠져나오지 않도록 기름을 바른 후 주변머리를 모두 걷어 올려 정수리에서 상투를 튼다. 이때 머리숱이 너무 많으면 정수리 부분을 민다. 오히려 지금 사람들은 “설마 조선 사람들이?” 라고 하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나 조선의 남자들은 자루 달린 백고칼로 머리를 민다.
일명 ‘백고친다’고 하는데, 머리를 미는 일은 머리카락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손질이었기에 가능했다. 상투의 크기는 높이 5~8cm, 지름 2.5cm로 마치 작은 알 하나를 올려놓은 듯한 크기로 만들 때 ‘멋쟁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상투를 틀고 난 후에는 동곳을 꽂아 마무리한다.
상투를 틀었다고 하여 머리치장이 끝난 것은 아니다. 상투 위에는 망건을 둘러야 한다. 망건은 원래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러니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게 단정하게 완성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멋 좀 낸다는 조선 남자들은 망건을 어찌나 단단히 두르는지 풀고 나면 피가 흥건하기도 하고, 이마의 위아래가 움푹 파일 정도였다.
실학자 이덕무는 망건을 지나치게 조여 이마에 자국을 남겨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지만 초상화 속 조선 남자들의 모습은 달랐다. 이마는 팽팽하게 당겨지고 눈꼬리까지 살짝 올라가 있다. 볼룩하게 튀어나온 이마는 보톡스 효과를 불러오고, 올라간 눈꼬리는 리프팅 효과를 준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너무 단단하게 두른 망건 때문에 편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살쩍밀이’가 있었기에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관자놀이가 있는 부근에 살쩍밀이를 넣어 망건을 살짝 들어 올리면 완화가 되니 그나마 참을 만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이제 갓을 쓸 차례이다. 갓은 말총으로 만든 총모자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만든 양태로 구성된다. 여기에 실 또는 비단, 포를 올리고 옻칠을 하여 검은 갓을 만든다. 좋은 갓은 그 무게가 15g 정도엥 불과했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비를 조금 맞아도 망가지기 일쑤였으니, 남자들이 가장 귀중하게 다루는 물건 중의 하나였다.
갓의 크기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 특히 조선후기 총모자는 높아지고 양태는 넓어졌다. 더욱이 총모자의 정수리 부분이 좁아져 마침내 머리가 총모자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갓을 썼다고 하기보다는 갓을 얹어 놓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갓끈이다. 잘못 묶으면 갓이 뒤로 넘어가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갓끈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비단으로 만들어 턱밑에서 묶어 갓을 고정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산호·마노·호박·수정·유리 등을 꿰어 만든 패영(貝纓)이다. 패영의 길이는 길게는 배꼽 아래까지도 내려오니 점잖게 걸을 때가 아니고서는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니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연꽃을 구경하는 신윤복의 그림 <청금상련>의 한 남자는 왼쪽 귀곁에 패영을 걸고 앉아 있다. 이 모습이 개항기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에게는 신기했던 모양이다. 맥오레도는 서양 속옷을 입은 모습에 패영을 귀곁에 걸고 갓을 쓴 남자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낯선 차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그만큼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이들의 눈에는 조선인의 갓이 그리도 멋지게 보였을까?
서양의 대표적인 모자 ‘실크햇’도 크라운이 높고 브림이 있는 모자이다. 형태만 놓고 보면 조선의 갓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갓을 썼을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조선의 갓은 대우와 양태가 만들어 내는 곡선, 양태를 통해 비치는 빛, 얼굴에 드리워지는 그늘이 부드럽고 은은하며 여백이 있다. 모자를 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의 주변에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머리에서 시작된 멋이 갓에 이르러 비로소 한 사람의 분위기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조선의 갓이 서양인의 눈에도 멋져 보였던 것이 아닐까.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19)
이민주(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