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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150평 집 팔고 떠났다…작곡가 주영훈, 미국 화장실 청소부 된 어머니

히트곡으로 가요계 호령하던 화려함 뒤편, 결벽마저 지워내야 했던 타국에서의 10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150평 집을 팔고 미국으로 떠난 목회자의 집안, 그리고 현지 고등학교에서 10년 넘게 변기를 뚫고 쓰레기를 치운 어머니. 1990년대 가요계를 호령한 작곡가 주영훈이 고백한 가족사는 연예계 이면에 숨겨진 근현대사적 이민의 그늘과 생계의 무게를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가 알던 모습과는 다른, 주영훈의 단단한 진심.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 영상 캡처
우리가 알던 모습과는 다른, 주영훈의 단단한 진심.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 영상 캡처

최근 공개된 유튜브 채널 ‘새롭게하소서’에서 주영훈은 강남 한복판에서 유복하게 지내던 유년 시절과 88서울올림픽 직전 감행된 미국 이민, 그리고 현지에서 이어진 혹독한 노동의 기록을 담담히 꺼내놓았다.

 

주영훈은 청담동에서 태어나 청담초등학교, 언북중학교,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강남 토박이다. 이민 전 그의 가족이 거주하던 곳은 청담동의 150평 규모 집이었다. 그러나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던 시점, 목회자였던 아버지는 올림픽 이후 집값이 폭등할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을 서둘렀다.

 

당시 아버지는 해당 주택을 1억5000만원에 급매로 처분했다. 이후 주변 부지는 건물이 들어서고 자산 가치가 폭등했으나, 주영훈 가족은 이미 미국 버지니아주로 떠난 뒤였다. 집안의 살림을 맡았던 어머니는 이때의 경솔했던 처분을 두고 평생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88서울올림픽 직전 급작스럽게 향했던 낯선 대륙, 그곳에서 마주한 이민 생활의 서늘한 현실. 셔터스톡
88서울올림픽 직전 급작스럽게 향했던 낯선 대륙, 그곳에서 마주한 이민 생활의 서늘한 현실. 셔터스톡

미국 이민 이후의 삶은 강남에서의 기억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가 선택한 일은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한 고등학교 청소부였다.

 

평소 엘리베이터 버튼조차 맨손으로 누르지 못하고, 옷소매나 팔꿈치를 이용할 정도로 위생에 민감했던 어머니였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거실조차 더럽다고 느껴 방문을 닫고 방 안에서 생활할 만큼 결벽 성향이 강했으나, 현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변기에 넣은 각종 쓰레기를 치우고 막힌 오수를 뚫는 일을 매일 8시간에서 9시간씩 감당해야 했다.

 

하루 노동을 마치고 귀가한 어머니는 오염에 대한 불안감으로 매일 두 시간 가까이 목욕을 하며 몸을 씻어냈다. 주말 역시 휴식은 없었다. 토요일에는 남편의 교회를 찾는 성도들을 위해 하루 종일 장을 보고 국거리를 손수 준비하는 고된 일정이 10년 넘게 반복됐다.

오염을 두려워하던 위생 관념을 지워내고 묵묵히 낯선 공간을 쓸고 닦아야 했던 인고의 시간. 셔터스톡
오염을 두려워하던 위생 관념을 지워내고 묵묵히 낯선 공간을 쓸고 닦아야 했던 인고의 시간. 셔터스톡

주영훈은 아버지의 신학대학 진학 권유를 뒤로하고 단돈 27만원을 들고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를 강남의 유복한 환경에서 오냐오냐 자란 인물로 바라보았으나, 실상은 집안의 재정적 지원 없이 맨땅에서 생계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1993년 심신의 ‘내가 처음 사랑했던 그녀’로 작곡가 데뷔를 이룬 그는 이후 성진우의 ‘포기하지 마’, 터보의 ‘Twist King’,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와 ‘Poison’, 코요태의 ‘비몽’ 등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로 자리매김했다. 유채영의 ‘Emotion’과 김현정의 ‘실루엣’ 등 강렬한 도입부 중심의 곡 설계는 90년대 나이트클럽과 길거리 가요 판도를 뒤흔들었다.

 

가수와 예능인으로서도 폭넓은 인기를 얻으며 방송가를 누볐지만,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히트곡의 밑바탕에는 미국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어머니의 노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해 3월 부친상을 당한 이후,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치매 증상이 악화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해 가을에는 낙상 사고까지 당해 의료진으로부터 요양원 입원을 권유받기도 했다.

 

그러나 주영훈은 가족들과 교인들의 간절한 간호 속에서 어머니의 고관절이 다쳤던 흔적조차 없이 깨끗이 회복되었으며, 기억력과 기력 역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기적을 맞이했다고 전했다. 최근 어머니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교회에 서서 찬양을 부르는 모습을 보며 지난 세월의 고통과 회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고 회고했다.

모든 역경을 지나 비로소 평온을 되찾은 일상, 그 기적 같은 쾌유가 머무는 자리. 셔터스톡 제공
모든 역경을 지나 비로소 평온을 되찾은 일상, 그 기적 같은 쾌유가 머무는 자리. 셔터스톡 제공

무대 위에서 숱한 성공을 거머쥐었던 작곡가의 스포트라이트 너머에는, 낯선 타국에서 결벽마저 내려놓은 채 가족의 생계를 지탱했던 어머니의 10년이 있었다. 청담동 150평 집에서 미국 고등학교의 화장실로 이어졌던 삶의 내력, 그리고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낸 어머니의 헌신은 아들 주영훈이 거둔 성공의 뿌리였다. 히트곡 제조기 주영훈의 진짜 이야기는, 바로 이 치열했던 가족사에서 비로소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