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모르죠 나 얼마나 그녈 많이 사랑한 지
그녈 위해선 아마 더한 버릇도 내가 다 고쳤을 텐데
그녀는 모르죠 내 모자란 자존심에 말 못했던
수많은 얘기 눈으로만 말한 걸
아마 듣지도 못하고 가나 봐요
2000년대 노래방에서 이 노래의 전주가 흘러나오면 남자들의 표정부터 달라졌다. 브이원(V.One)의 대표곡 ‘그런가봐요’다.
남자들이 모인 자리라면 누군가는 꼭 이 노래를 골랐다. 마이크를 잡으면 눈부터 감았고 고음에서 목이 갈라져도 기어이 끝까지 불렀다. 도대체 누구를 떠올리길래 저러나 싶었던, 그 시절 남자들의 이별곡 18번이었다.
이 노래의 주인은 브이원으로 활동한 강현수다. 훤칠한 키에 배우 같은 외모로 예능 프로그램까지 누비더니 ‘면도’로 또 한 번 노래방을 접수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방송에서 보이지 않았다.
소식이 뜸하던 그가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하나로 다시 화제가 됐다.
‘25년 전에 은퇴할 뻔했어. 그날 4362명이 왔어. 은퇴는 면했는데 1호 실패 가수가 됐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였던 ‘게릴라 콘서트’ 이야기였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목표 관객을 모아야 했던 무대였다. 비록 목표 인원을 채우지 못해 ‘1호 실패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그는 그날 자신을 찾아준 사람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다고 적었다.
그로부터 25년. 노래방에서 불리던 이별 노래의 주인은 성수동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었다. 근황이 반가웠고 고기 맛은 더 궁금했다. 지난달 21일 성동구 성수동의 가게에서 강현수를 만났다. 큰 키에 작은 얼굴, TV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손님을 받기 전인데도 가게 안은 이미 분주했다. 숯을 피우고 고기를 손질하며 저녁 장사 준비에 한창이던 그가 먼저 웃으며 인사했다.
“조용히 살다가 오랜만에 인터뷰하려니까 쑥스럽네요.”
사실 이 인터뷰, 몇 번을 조른 끝에 겨우 얻어냈다. 왜 마음을 바꿨느냐고 물었다.
“세계일보였으니까요. 세계로 가자 했죠.(웃음)”
농담 한마디에 어색함이 풀렸다. 화제가 된 SNS 글도 거창한 뜻으로 쓴 건 아니었다. 요즘 유행하는 반말 일기 형태로 ‘나 이렇게 살고 있다’ 정도로 적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기사가 쏟아져 깜짝 놀랐다고 했다.
글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늘었다. 대부분 티 내지 않고 조용히 식사만 하고 간다.
“다음엔 티 좀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알아야 뭐라도 더 챙겨드리죠.”
전광판 숫자가 ‘4’로 시작했던 그날의 기억
게릴라 콘서트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기억은 25년 전 11월 안양 거리로 돌아갔다. 브이원이 되기 전 본명 강현수로 활동하던 신인 시절이다.
당시 ‘은퇴 공약’은 본인이 걸었던 게 아니었다. 소속사 대표가 제작진과 상의해 덜컥 정한 것이었다. 24시간 동안 안양 시내를 뛰어다니며 사람을 모을 때 머릿속엔 ‘2000명만 와 달라’는 생각뿐이었다.
추운 저녁, 안대를 쓰고 무대에 서 있던 그는 바깥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안대를 벗자 관객들이 눈에 들어왔고 전광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숫자가 ‘4’로 시작하고 있었다.
“살았다 싶었죠.”
공식 집계는 4362명. 공연이 끝나고 뒤늦게 도착한 인원까지 합치면 7000명이 넘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고 했다. 그날 이야기만 나오면 ‘짠하다’는 반응이 돌아오지만 그에게 4362는 실패의 숫자가 아니다.
“그때 한 명만 모자랐어도 은퇴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 마음이 그냥 배어 있는 것 같아요.”
공장 골목에 차린 일본식 화로구이집
최근 서울 대표 핫플레이스가 된 성수동과의 인연은 9년 전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상권이 형성되기 전이었다.
“다리만 건너면 서울숲이 있고 지하철 2호선이 지나니까 잘만 하면 동네가 좋아지겠다 싶었는데, 너무 빨리 좋아졌죠.”
처음 차린 한식당은 잘됐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접어야 했고, 4년 전 북성수의 공업사가 늘어선 골목에 일본식 화로구이(야키니쿠) 집을 새로 열었다.
입지부터 따졌다. 메인 도로가 아니니 손님이 일부러 찾아올 만한 메뉴여야 했다. 흔한 삼겹살이나 소고기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해 고른 게 우설이었다.
인테리어도 직접 했다. 빨갛게 칠한 벽 한쪽에는 1집 재킷 사진을 일본풍 포스터로 꾸며 걸었다. 젊은 강현수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지만 정작 사장의 얼굴이라고 알아보는 손님은 많지 않다.
연예인 후광 효과를 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활동을 쉰 지 오래라 장사에 덕 볼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메뉴판에 자기소개를 적어둔 것도 홍보용이 아니다. 연배가 비슷한 손님들이 “어디서 본 얼굴인데” 하며 헷갈려할 때 “저 아세요?”라고 먼저 말을 꺼내기가 겸연쩍어서다.
장사 이야기가 나오자 현실적인 셈부터 했다. 임대료, 물류비, 인건비를 빼고 나면 남는 게 많지 않다. 고기를 직접 구워주지 않는 데도 이유가 있다. 그러려면 직원을 두어 명 더 써야 하는데 20평 남짓한 가게에선 수지가 맞지 않는다. 창업은 쉬워도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했다.
“가수 시장이나 여기나 똑같습니다. 치열해요.”
그렇게 4년을 버텼다. 지금은 전체 손님의 70∼80%가 단골이라고 했다.
4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을 묻자 개업 1년 반쯤 지났을 때의 하루를 떠올렸다. 직원과 둘이서 매장을 보던 날, 예상치 않게 손님이 몰려들었다.
불을 붙이고 술을 따르고 그릇을 치우며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물 한 모금 마실 틈 없이 올린 그날의 매출은 약 450만 원. 새벽 1시에 마감하고는 인근 감자탕집으로 가 새벽 3시까지 소주를 마시며 고된 하루를 털어냈다.
“사람이 할 노동을 벗어났었죠. 그래도 그날이 제일 기억나요.”
“송강 씨 자리가 어디예요?”…연예인들이 찾는 맛집
가게 벽면에는 연예인 사인들이 빼곡하다. 근처에 SM, 큐브, FNC 등 주요 기획사들이 있다 보니 엔터 업계 관계자들이 자연스레 찾아온다.
배우 송강이 한 번 다녀간 뒤로는 팬들의 발길까지 이어졌다.
“키 크고 잘생긴 분이 모자를 쓰고 들어오시더라고요. 조용히 식사하고 가시길래 사인만 받았는데, 그 사인을 벽에 붙였더니 입소문이 났어요. 팬분들이 오셔서 ‘송강 씨 자리가 어디냐’, ‘뭘 드셨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저희도 다 기억은 못 해서 ‘이거, 이거 드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대로 시켜 드시고 가셨어요.”
송강 이야기를 듣다 문득 눈앞의 사장 역시 한때 무대에 서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염치 불고하고 노래 한 소절만 불러달라고 청했다.
“노래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는데….”
난감한 표정을 짓던 그는 한동안 머뭇거렸다. 그러다 불판 앞에 선 채 조심스럽게 첫 소절을 꺼냈다.
“고맙다는 그 말∼ 잘 못하는 사람∼”
2000년대 수많은 노래방에서 남자들이 눈을 감고 목청껏 불렀던 ‘그런가봐요’.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노래를 성수동 고깃집 불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원곡자의 목소리로 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조르길 잘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손님들이 ‘가수 강현수’를 보러 오는 게 좋은지, ‘고기 맛’을 보러 오는 게 좋은지. 답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당연히 고기죠. 저 보러 오실 거면 공연하러 가는 게 낫죠. 여긴 음식점이잖아요.”
강현수가 불판 앞에서 부른 ‘그런가봐요’는 세계일보 유튜브 <29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