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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섞어 먹던 조합이 신제품 됐다…1억개 팔리자 유통업계 ‘내시피’ 경쟁

신라면에 우유와 치즈를 넣고, 박카스에는 사이다를 섞는다. 기업이 만든 레시피가 아니다. 소비자들이 먼저 찾아내 SNS에서 퍼뜨린 조합이다.

 

굽네 제공
굽네 제공

유통업계가 이런 소비자 레시피를 신제품으로 만드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에는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이색 조합 정도로 여겼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만든 레시피를 그대로 상품화하거나 아예 신메뉴 개발 과정에 참여시키는 단계까지 왔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굽네는 최근 신제품 '서울엄마 파기름떡볶이 치킨'을 활용한 '찰떡조합 오디션'을 시작했다. 소비자가 치즈나 떡 같은 토핑을 더하거나 별도 사이드 메뉴를 조합해 자신만의 먹는 방법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오는 18일까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틱톡, 네이버 블로그·카페 등에 조합을 올리고 이벤트 페이지에 게시물 주소를 제출하면 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굽네는 출품작 가운데 후보를 추린 뒤 공식 인스타그램 투표를 거쳐 1등을 선정한다.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조합은 굽네의 실제 한정 메뉴로 출시된다. 소비자가 신제품을 평가하는 수준을 넘어 메뉴 개발에 직접 들어오는 셈이다.

 

이번 오디션의 바탕이 된 서울엄마 파기름떡볶이 치킨은 지난 9월 10일 출시됐다. 한식 요리 전문가 우정욱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수퍼판의 '한우 기름떡볶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매콤달콤한 양념과 대파 풍미를 오븐구이 치킨에 접목한 제품이다.

 

소비자 레시피의 상품화가 실제 매출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는 농심 '신라면 툼바'다.

 

신라면에 우유와 치즈, 새우, 베이컨 등을 넣어 먹는 '신라면 투움바'는 2016년 무렵부터 SNS를 통해 확산했다. 농심은 이를 제품으로 구현해 2024년 9월 신라면 툼바 큰사발면을 내놨고 한 달 뒤 봉지면까지 추가했다.

 

반응은 숫자로 확인됐다. 출시 두 달 만에 용기면과 봉지면을 합쳐 1100만개가 팔렸고, 농심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글로벌 누적 판매량은 1억개를 넘어섰다. 소비자가 집에서 만들어 먹던 레시피가 하나의 대형 제품군으로 성장한 것이다.

 

농심은 올해 다시 이 방식을 택했다. 지난 5월 한국과 일본에 내놓은 '신라면 로제' 역시 토마토와 크림에 고추장을 섞는 이른바 'K-로제' 모디슈머 레시피를 신라면에 적용한 제품이다.

 

서울 성수동 '신라면 분식'에서는 소비자가 면과 스프, 별첨 재료를 직접 조합할 수 있도록 하고, SNS에서 유행한 신라면 볶음밥과 아부라소바도 실제 판매 메뉴로 선보였다.

 

박카스와 사이다를 섞어 마시는 '얼박사'도 소비자가 먼저 만든 조합이다.

 

얼음컵에 박카스F와 사이다를 넣어 마시는 방식이 찜질방과 PC방, SNS 등을 중심으로 퍼지자 동아제약은 지난해 6월 이를 355㎖ 캔 음료로 정식 출시했다. 따로 음료를 구입해 섞어야 했던 레시피를 완제품 하나로 만든 것이다.

 

흥행 속도도 빨랐다. 동아제약에 따르면 얼박사는 출시 1년 만에 누적 판매 3500만캔을 넘어섰다. 올해 3월에는 당류를 뺀 '얼박사 제로'까지 추가했고, 7월에는 이디야커피와 손잡고 얼박사에 에스프레소를 더한 '얼박샷추' 등 시즌 음료로 영역을 넓혔다.

 

외식업계에서는 제품을 새로 만드는 것뿐 아니라 주문 단계에서 소비자에게 조합권을 주는 방식도 늘고 있다.

 

KFC는 치킨텐더와 함께 파이어칠리, 스모키머스타드, 그레이비, 스파이시마요 등 여러 소스 가운데 원하는 맛을 고를 수 있도록 한 '디핑텐더'를 선보였다. 투썸플레이스에서는 '떠먹는 아박'에 에스프레소 샷이나 과자 등을 더해 먹는 방식이 SNS를 중심으로 확산했고, 올해 6월 제품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정부도 이런 흐름을 별도 소비 트렌드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식품·외식산업 전망에서 '내시피의 확대'를 주요 키워드로 제시했다. 정해진 메뉴를 그대로 소비하기보다 재료와 소스, 토핑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꿔 먹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 식품회사의 신제품 개발은 회사가 만들고 소비자가 선택하는 구조였다. 지금은 순서가 뒤집히는 사례가 잇따른다. 소비자가 먼저 섞어 먹고 SNS에 올리면 기업이 반응을 확인한 뒤 제품으로 만든다.

 

굽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어떤 조합을 제품으로 만들지까지 소비자의 투표로 결정한다.

 

SNS에서 시작한 한 끼의 '꿀조합'이 수천만개, 많게는 1억개가 팔리는 정식 상품으로 커진 사례가 나온 만큼 업계가 소비자의 레시피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신제품을 사 먹는 마지막 단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제는 신제품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