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환 10주년이던 2007년 현지 취재를 했다. 홍콩 20대 여성 5명을 모아놓고 방담을 했더니 공교롭게 출생지가 2(홍콩)대 2(대륙 출신 유학생)대 1(대륙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홍콩 이주)로 나뉘었다. 화기애애하게 시작됐으나 각종 현안, 정체성, 장래 등 질문이 거듭되며 인식차가 확인되자 분위기가 굳어갔다. 홍콩 출생자와 대륙 출생자가 2대 2로 의견이 맞섰고, 나머지 한 명은 당황하며 딱 그 중간에 섰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에서 긴장이 최고조였다. 홍콩 출신이 “언론 자유가 많이 위축됐다”고 안타까워하니, 상기된 표정의 대륙 출신이 “홍콩인에게 중화민족 교육을 더 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20년이 지나도 머릿속에 남은 장면이다.
성룡, 장국영, 주윤발…. 우리에게 아직도 익숙한 홍콩 스타 이름이 상징하듯 과거 아시아를 주름잡던 홍콩영화의 명성이 어느 순간 손바닥 안의 연기처럼 사라졌다. 1997년 ‘홍콩 반환’이 원인으로 꼽힌다. 언론 자유가 위축됐다는 홍콩 여성의 체감처럼 중국 정부와 홍콩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에 홍콩 예술인의 창작 의지도 꺾였기 때문이다.
K콘텐츠의 성공 비결로 민주화 이후 소재의 성역이 없어진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가 거론된다. 그런데 최근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다. 관람자 다수가 수작이라고 평가함에도 저격범 문세광의 배후가 박정희 전 대통령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설정하면서 보수 진영의 반발이 거세다. 감독은 물론 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등 출연 배우에 대한 압박도 광풍(狂風)에 이를 지경이다. 박정희·전두환 시대를 소재로 한 영화가 종종 논란을 일으킨 바 있으나 이런 경우는 없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직접 개입이 파문을 증폭시키고 있다. 극단적 정치 양극화가 ‘문화전쟁’이라는 내전 형태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사실(史實)도 중요하고 창작도 중요하다. 민형사 소송 절차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있기에 이런 소동은 불필요하다. 홍콩영화처럼 정치적 개입이 창작 의지를 위축시켜 한국 영화의 근본을 뿌리 뽑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