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을 산 나무가 죽어서 내가 태어났다
아직 죽지 않은 사람 나는 그 나무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그것만이 역사다
사람과 신은 책장처럼 붙어 있지만 서로 볼 수 없다 사람은 작고 신은 커서
신에게 선악은 사소한 일이다
다만 빌려준다 사람에게
기다려 보라는 듯이 다 생각이 있다는 듯이
나무를 빌려서 책을 만들었다
우리는 멀리 있었지만 책 속에서 만난다 책 속에서 우리는 가깝다
작은 소리로 불러도 대답할 수 있다
책이 포탄을 막을 수 있을까 책장을 찢어 배를 만들었다
나는 찢겨 종이배가 된다
바람을 빌려서 배를 띄운다 살아 있음을 향해
(하략)
책으로 포탄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한 편의 시로 전쟁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기어이 “책장을 찢어 배를” 만든다. 찢어진 종이배에 불과할지라도 무엇이든, 무엇이든 한다. “살아 있음을 향해”.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집단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무려 삼년이란 시간 동안, 참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크고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람을 떠올려 본다면 어떨까. 여기와 그리 다르지 않은 곳에서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일구려 몸부림치는 사람, 사람들을. 나와 닮은 작은 이들을. 그들의 불탄 집과 잃어버린 가족, 피투성이 몸을. 울부짖는 얼굴을. 다만 삶을 바라는 사람의 얼굴.
시에서 이르듯, 살아 있는 누구라도 이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마음이 있다. 사람이라면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어떤 것. 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작은 사람이지만 크나큰 대답을 한다”. 그럴 수 있다. 사람만이 사람을 향해 응답할 수 있다.
박소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