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진 턱살과 거대한 뱃살을 장착한 톰 크루즈의 곡예에 가까운 연기도 역부족이었다.
할리우드 톱스타 톰 크루즈와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 받은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가 손잡은 영화 ‘디거’가 개봉 첫 주 처참한 성적으로 출발했다. 영화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2일 북미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첫 주말 800만달러(약 108억원)를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전 세계 흥행 수입도 2000만달러(약 269억원)에 불과하다. 톰 크루즈 주연 영화 중 2007년 ‘로스트 라이언즈’ 이후 가장 낮은 개봉 성적이다.
관객 만족도를 나타내는 시네마스코어는 C+ 등급을 기록했다. 미 영화 전문 매체 데드라인은 복수의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제작비 1억2500만달러(약 1684억원)가 투입된 이 영화가 워너브러더스에 1억5000만달러(약 2021억원) 안팎의 손실을 안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반응도 신통치 않다. 개천절 연휴 첫날인 3일 개봉했지만 4일까지 누적 관객은 2만8000여명에 머물렀다. 전국 500여 스크린에서 상영됐으나 박스오피스 8위에 그쳤다. 개봉 직전인 지난 1~3일 크루즈가 13번째 내한 홍보일정을 소화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톰 형’, ‘톰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친숙한 배우조차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지 못한 셈이다.
영화는 무분별한 북극 시추로 기후 재앙을 촉발한 석유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정치 풍자극이다. ‘버드맨’, ‘레버넌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쥔 이냐리투 감독의 신작으로, 크루즈는 특수분장을 하고 노쇠한 석유 재벌로 변신했다.
문제는 영화의 야심이 지나치게 비대했다는 점이다. 영국 가디언은 이 작품을 두고 “올해 가장 실망스러운 영화”라고 평가했다. 기후위기를 다루는 풍자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정치권력과 현대인의 자기 기만 등 여러 주제를 한꺼번에 끌어안으려다 설득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극 중 거대한 설정 전환과 메타 서사에 대한 집착이 영화를 지나치게 장황하고 과시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번 실패는 단순한 흥행 부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디거’는 파라마운트와 합병을 앞둔 워너브러더스의 마지막 개봉작이다. 1923년 설립 이래 103년 독립 스튜디오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 흥행 참패로 남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워너브러더스 영화 부문은 최근 몇 년간 프랜차이즈보다 감독 중심 오리지널 프로젝트에 과감하게 투자해 왔다. 라이언 쿠글러, 폴 토머스 앤더슨, 매기 질런홀 등에 이어 이냐리투에게도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했다. 흥행 공식보다 창작자에의 비전에 무게를 둔 이른바 ‘작가주의 블록버스터’ 실험이었다.
‘디거’의 흥행 실패는 그 실험의 한계를 드러낸 상징적 사례로 여겨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공포영화를 제외한 오리지널 영화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최신 사례”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