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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약 공급 흔들리는데…원가보전은 ‘뒷북’

‘국가필수의약품’ 공급 차질 5년간 307건
제조·수입업체 두 곳 이하 품목서 절반 이상 발생
원료혈장 자급률 95%→42.9% ‘반토막’
“원가 상승·약가 조정 시차…상시 대응 필요해”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국가필수의약품’의 공급 차질이 5년여간 300건 넘게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절반 이상은 제조·수입업체가 두 곳 이하인 품목에서 발생했다. 다른 의약품과 달리 필수의약품은 대체 치료제가 없어 공급 차질이 곧 환자들의 생명과도 직결된다.

 

정부에선 약가를 조정해 공급업체의 원가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유지하고 있지만, 업계는 원가 상승이 약가에 반영되기까지의 ‘시차’로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호소한다. 정부가 공급 부족이 발생할 때 일시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시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국가필수의약품’의 공급 차질이 5년여간 300건 넘게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한 약국의 모습. 연합뉴스
환자 치료에 꼭 필요한 ‘국가필수의약품’의 공급 차질이 5년여간 300건 넘게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한 약국의 모습. 연합뉴스

◆공급자 두 곳뿐…품절 반복되는 혈장분획제제

 

국민의힘 이소희 의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6년 2월까지 발생한 국가필수의약품의 공급 차질은 총 307건이었다. 공급 부족이 158건, 공급 중단이 149건이었다. 전체 공급 차질 사례의 51.8%는 제조·수입업체가 두 곳 이하인 품목에서 발생했다. 공급업체가 적은 품목은 특정 업체의 생산이나 수입에 문제가 생길 경우 다른 공급처를 통해 부족분을 확보하기 어려워 환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공급 취약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품목이 ‘혈장분획제제’다. 혈장분획제제는 사람의 혈장에서 면역글로불린, 알부민, 혈액응고인자 등 특정 단백질을 분리·정제해 만든 의약품이다. 수혈용 혈액보다 유효기간이 길고 보관이 용이할뿐더러 혈액형과 관계없이 사용이 가능해 의료 환경 전반에 쓰인다. 이 중 면역글로불린은 면역기능이 저하된 환자와 가와사키병(소아에서 발생하는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 환자 등의 치료에 쓰인다.

 

현재 국내에서 혈장분획제제를 생산하는 기업은 단 두 곳(GC녹십자, SK플라즈마)뿐이다. 원료 혈장을 확보한 뒤 분획, 정제, 품질검사, 국가출하승인을 거쳐 완제품을 출하하기까지도 1년가량이 걸린다. 공급 차질이 발생해 생산을 확대하더라도 단기간 내 물량을 정상화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실제로 혈장분획제제의 일종인 면역글로불린은 2023년 대규모 공급 부족을 겪었다. 일부 의료기관에선 환자의 투약 일정이 지연되는 사례가 보고됐고,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식약처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문제는 그해 국정감사에서도 지목됐다. 당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위원이었던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변수라기보다 작년 임시 품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충분히 주시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지적했고, 오유경 당시 식약처장은 “(원료 혈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3년 전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공급 불안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혈장분획제제에 필요한 혈장의 국내 자급률은 급격히 감소하는 추세다. 이 의원에 따르면 국내 원료 혈장 자급률은 2015년 95.4%에서 2024년 42.9%로 9년 새 반토막이 났다. 반면 헌혈 실적은 2018년 약 288만3270건에서 2025년 약 283만9632건으로 1.51% 줄었다. 국내 혈장 총 사용량은 2배 넘게 폭증했지만 공급은 사실상 제자리인 셈이다.

 

부족분은 수입 혈장으로 채워야 하지만, 해외 조달 여건도 녹록지 않다. 2015년 1131.29원이었던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2025년 1422원으로 약 25.7% 상승했다. 전 세계 원료혈장 시장의 약 70%를 미국이 공급하는 상황에서 해외 혈장 가격과 환율 변동이 국내 제조원가에 큰 영향을 끼치는 구조다.

 

◆원가 상승·약가 조정 시차…상시 대응 체계 필요

 

정부는 혈장분획제제와 같이 시장 공급에만 맡기기 어려운 의약품을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해 원가를 보전하고 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정부는 2024년 혈장분획제제의 약가를 인상했지만, 올해에도 알부민 등이 식약처 공급부족보고 목록에 오르는 등 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는 원가 상승과 약가 조정 사이의 시차를 문제로 지적한다. 정부가 적정 원가를 검토하는 기간에 업체는 가격·환율 상승으로 인한 생산 부담을 고스란히 부담하게 된다. 특히 현행 퇴장방지의약품 제도가 사후적인 원가보전만 가능해 실제 제조원가와 약가 간 격차를 충분하게 해소하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공급 부족이 발생할 때마다 약가를 조정하는 일회성 조치에서 벗어나 환자 수요, 원료 수급, 제조 원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상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한적십자사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하는 공동 대응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이소희 의원은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이 반복돼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것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정부가 반복되는 공급 차질에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묻고, 실제 환자 수요에 맞춰 원료 수급과 적정 원가보전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상시 대응 체계의 구축 계획과 이행 시한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