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세일 때 쟁여두거나 선물 세트로 들어와 냉동실 깊숙한 곳에서 자리만 차지하던 삼겹살. 뒤늦게 꺼내 보면 표면은 허옇게 말라비틀어져 있고, 해동을 해봐도 코를 찌르는 퀴퀴한 냉동실 쩐내가 가시지 않는다.
아까운 마음에 그냥 구워 입에 넣었다가는 고기 특유의 고소함은커녕 비린내가 확 올라와 젓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결국 남은 고기를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 기억,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곤혹스러운 묵은 삼겹살. 이 고기를 생고기처럼 촉촉하고 잡내 없이 되살려내는 방법은 요란한 레시피나 비싼 소스에 있지 않다. 주방 찬장 한구석에 자리 잡은 밀가루와 소주 한 잔이면 충분하다.
오래 냉동된 고기에서 역한 냄새가 나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기가 차단되지 않은 상태로 냉동실에 방치되면서 수분이 다 빠져나가고, 고기 표면의 지방 성분이 미세하게 산화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단백질 변성까지 겹치면서 해동을 해도 핏물과 함께 묵은 내가 고기 결 사이에 꽉 박혀 버린다.
흔히 이 냄새를 가리기 위해 후추를 통째로 뿌리거나 된장이나 허브에 재워보지만, 이미 깊게 배어든 쩐내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억지로 구워봤자 누린내는 열기와 함께 더욱 진동할 뿐이다.
물리적인 양념으로 냄새를 덮으려는 시도는 거꾸로 가는 길이다. 고기 깊숙이 박힌 잡내는 화학적이고 물리적인 흡착 작용으로 원인 자체를 뽑아내야 한다. 그 해답이 바로 밀가루다.
과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간단하다. 얼어 있던 삼겹살을 완전히 해동한 다음, 볼에 담고 밀가루를 넉넉하게 뿌려준다. 그리고 손으로 주물러 가며 고기 구석구석을 치대 준다.
여기서 밀가루는 그저 평범한 가루가 아니다. 미세한 입자를 가진 밀가루는 강력한 흡착력을 지녀 고기 표면에 엉겨 붙어 있는 산화된 지방 성분, 미세한 불순물, 그리고 쩐내의 근원인 잡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 고기 표면의 찌든 잡내를 흡수해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밀가루로 조물조물 주물러 씻어낸 삼겹살을 흐르는 물에 가볍게 헹궈낸 뒤, 이번에는 소주를 흥건할 정도로 부어준다.
소주 속 에탄올 성분이 고기 속에 남아 있는 잔류 잡내와 잡균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알코올이 날아가는 성질을 이용해 비린내를 공중으로 증발시키는 원리다.
소주에 10분 정도 가볍게 재워둔 삼겹살은 물에 헹굴 필요 없이 키친타월로 겉면에 남은 물기를 꾹꾹 눌러 닦아내면 끝이다.
이때 고기 표면을 세게 문지르기보다 가볍게 눌러 잔여 수분만 흡수시켜야 한다. 그래야 소주의 미세한 당분과 감칠맛 성분이 표면에 오롯이 코팅되어 구울 때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칙칙했던 고기 색감이 맑아지고, 냉동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사라진다.
지방층은 하얗게 살아나고 살코기 부위는 마치 방금 마트에서 사 온 생고기처럼 촉촉한 탄력을 되찾는다. 여기에 소주의 미세한 당분이 고기 표면에 남아 구울 때 은은한 감칠맛과 노릇한 색감을 더해주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자극적인 양념으로 냄새를 덮는 대신 본연의 오염을 걷어내는 과정 하나면 충분하다. 냉동실 구석에서 잊혀져 가던 묵은 삼겹살이 생고기 못지않은 결을 되찾는 순간, 버려질 뻔한 것들에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하는 주방의 원리가 완성된다.
오늘 밤, 냉동실 문을 열고 눈에 밟히던 식재료를 꺼내 밀가루를 묻혀 보자. 잃어버렸던 고기 본연의 맛을 되찾는 일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단 몇 분의 지혜로 평범한 밥상이 달라지는 경험을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