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겨울이 물러나면 봄이 찾아온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 변화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다. 동양 고전 『주역』이 탐구해온 것도 이러한 변화의 이치다. 주역의 대가 고(故) 대산 김석진 선생의 제자인 건원(乾元) 윤상철 대유학당 대표가 음양의 변화 원리를 중심으로 주역을 풀어낸 『건원의 음양주역』(전 5권)을 지난 5일 출간했다.
음양의 변화로 주역의 숨은 뜻을 읽다
『주역』은 고대 중국에서 성립한 유교 경전으로, 음양으로 구성된 64괘와 384효를 통해 자연과 인간사의 변화 원리를 탐구한 책이다. 한국에서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등 여러 학자가 연구하고 해석해왔다.
책은 저자가 근 40년간 주역을 공부하고 강의하며 쌓아온 연구의 결실이다. 기존 해석법으로 뜻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던 효사에 음양이 자라고 사그라지는 ‘소장(消長)’의 원리를 적용해 해석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효사(爻辭)는 괘(卦)를 구성하는 각각의 효(爻)에 붙은 글로, 변화의 각 단계에서 처한 상황과 길흉을 나타낸다.
저자는 64괘를 우주 만물이 펼쳐지는 공간으로, 각 괘의 여섯 효를 그 안에서 변화가 진행되는 시간으로 바라본다. 하나의 상황이 시작되고 전개돼 마무리되는 과정을 여섯 단계로 읽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한 해 열두 달의 음양 변화를 나타내는 ‘12달 제후괘’, 이른바 ‘12벽괘’를 64괘 전체의 해석에 연결한 데 있다. 이 체계에서는 음력 11월부터 4월까지 양의 기운이 점차 자라고, 5월부터 10월까지는 음의 기운이 점차 자란다고 본다. 저자는 다른 괘들이 어느 제후괘에서 파생됐는지를 살피고, 그 뿌리가 되는 괘의 성격을 해석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음력 11월에 해당하는 복괘에는 사괘와 겸괘를 배속한다. 두 괘를 복괘에서 파생된 괘로 보고, 양의 기운이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때의 성격을 함께 읽는 것이다. 감괘·리괘·중부괘·소과괘는 24절기를 맡는 네 ‘윤달괘’로 구분해 설명한다.
이러한 접근은 기존 해석법을 바탕으로 하면서 변화의 흐름을 더 살피려는 시도다. 주역에서 효의 위치와 관계를 읽는 주요 기준은 ‘중정응비(中正應比)’다. ‘중(中)’은 아래 세 효와 위 세 효에서 각각 가운데인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자리를, ‘정(正)’은 효의 음양과 자리의 음양이 맞는 상태를 뜻한다. ‘응(應)’은 아래와 위의 대응하는 효 사이의 관계를, ‘비(比)’는 이웃한 효 사이의 관계를 가리킨다. 중정응비는 효의 위치와 다른 효와의 관계를 살펴 그 의미를 해석하는 기준이다.
저자는 여기에 “지금 음이 자라는 때인가, 양이 자라는 때인가”라는 질문을 더한다. 특히 12달 제후괘에서는 개별 효의 위치나 관계보다 음양의 세력이 커지고 쇠하는 흐름이 우선한다고 해석한다. 파생된 괘에서는 중정응비와 팔괘의 성격을 살피되, 뿌리가 되는 제후괘와의 연결도 함께 읽는 것이다.
주역을 음양의 소장과 괘의 변화에 주목하는 해석은 오랜 역학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12달 제후괘와 파생괘의 효사를 일대일로 비교해, 해석이 엇갈리는 구절의 의미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비교는 ‘정(貞)’을 ‘바르게 행동한다’로 읽을지 ‘고집을 피운다’로 읽을지, ‘무구(无咎)’를 ‘허물이 없다’로 볼지 ‘다른 사람을 허물할 수 없다’로 볼지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효사의 뿌리를 살펴 현재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연구 방법이다.
뿌리를 살피는 목적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데 있다. 저자는 변화의 학문인 주역에서 길함에 이르려면 뿌리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변화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이러한 ‘뿌리와 현재의 관계’를 64괘와 384효에 걸쳐 살핀 것이다.
연구의 전환점은 천지비괘의 두 번째 효를 살피던 중 찾아왔다. 저자는 기존 원칙대로라면 서로 도울 것으로 보이는 효들이 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음양의 소장 원리에 주목했고, 풀리지 않던 효사의 뜻이 선명해졌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역사와 일상으로 주역 읽는 재미를 더하다
역사와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주역을 풀어낸 점도 눈에 띈다. 전권에 걸쳐 담은 읽을거리는 고전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전봉준과 전주화약’, ‘퇴계선생과 군자유종’, ‘세종대왕도 어려워한 며느리 내쫓기’ 등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는가 하며, ‘백수개미도 필요하다’,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처럼 현대인의 관심을 끄는 소재도 다룬다. 고전의 개념을 역사와 일상의 이야기로 풀어내려는 구성이다.
어려운 개념을 현대 생활에 빗대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는 가운데 자리를 얻은 효의 덕을 주변의 처지를 살피고 배려하는 능력으로 풀이한다. 바른 자리를 얻었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에는 녹색 신호에 길을 건너더라도 언제나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비유를 들었다.
여섯 효의 단계도 직장생활과 연결한다. 초효는 인턴이나 신입사원, 두 번째 효는 중견사원, 세 번째 효는 지점장, 네 번째 효는 경영자를 보좌하는 고위직, 다섯 번째 효는 사장, 마지막 상효는 은퇴 뒤의 자문·고문에 빗댄다. 각 단계에 따르는 역할과 책임을 통해 고전의 뜻을 이해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효마다 현대 생활에 응용한 점례도 마련했다.
대산 “건원이 연구를 잘하니 매진해보아라”
대산 선생은 생전에 “괘가 나온 뒤에 괘를 해석하는 글이 나왔으므로, 주역경문의 모든 글을 괘에서 찾아내야 한다. 건원이 연구를 잘하니 매진해보아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윤 대표는 스승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끊임없이 연구를 이어왔다. 대산 선생은 윤 대표에게 강의와 함께 책도 준비해보라며 저술을 독려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1987년부터 대산 선생 문하에서 사서와 역경 등을 공부했으며, 성균관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스승의 여러 저서 편집에 참여했고, 2019년 출간된 『새로 쓴 대산주역강의』에서는 종합교정을 맡았다.
서문에는 연구의 실마리를 찾은 기쁨과 이를 스승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함께 담겼다. 저자는 깨달음을 얻고 스승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고 회고했다. ‘이 책의 향기를 선사님께 바치며’라는 서문 제목에는 오랜 탐구를 이끈 스승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다.
김성기 전 성균관대 유학대학원장은 추천사에서 음양의 소장운동을 적용한 해석에 주목하며 “나머지 괘의 효사도 12벽괘의 효사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 점은 학계에서 깊이 연구할 과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병운 한국홍역학회 회장은 “그 경문이 어떤 논리와 규칙에서 나온 것인지, 이것을 벗어난 것은 왜 그런지 알기 쉽게 밝혀 놓았다”고 평했다.
책에는 스승의 가르침을 이어온 연구 자세에 대한 평가도 담겼다. 함께 수학한 이찬구 인하대 특임교수는 “젊은 시절 스승에게서 받은 한마디의 가르침을 평생의 화두로 삼고” 연구를 이어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신성수 신문로인문학회 대표는 이 책이 “현대인들의 삶에 이정표가 되고 나침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저자와 함께 대산 선생 문하에 입문했던 박완수 가천대 한의과대학장은 “학문은 깊어질수록 사람을 향해야 하며, 배움은 쌓일수록 다른 사람을 길러내는 데 쓰여야 한다”는 주역의 가르침이 저자의 삶과 학문에 배어 있다고 평가했다.
『건원의 음양주역』 1·2권은 주역 64괘 중 중천건(1)에서 중화리(30)에 이르는 주역 상경을, 3·4권은 택산함(31)에서 화수미제(64)에 이르는 주역 하경을 해설한다. 5권에는 계사전과 설괘전·서괘전·잡괘전 해설을 담았다. 1권 344쪽, 2∼5권 각 336쪽으로 모두 1688쪽이다. 각 권 3만원.
출간기념회는 오는 13일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17길 48 SK V1 센터 1동 814호 대유학당에서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