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04조 제2항은 한 문장에 불과하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이 짧은 문장은 별 탈 없이 작동해왔다. 문장 자체가 완벽해서가 아니었다. 문장의 빈틈을 관행이 메워 왔기 때문이다. 역대 대법원장은 청와대와 최종 후보를 물밑에서 조율한 뒤 제청했다. 최근의 갈등은 바로 그 관행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8월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부장판사를 제청했다. 그러면서 사전 조율 없이 서면으로 제청안을 올렸다. 청와대는 제청을 반려하고 재제청을 요청했다. 대통령이 대법관 제청을 거부한 것은 1958년 이후 처음이다. 대법원장은 다시 맞섰다. 청와대의 재제청 요구 문서에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한 것이다. 관행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지자 두 헌법기관이 맨몸으로 부딪친 셈이다.
이 싸움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것은 양쪽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가진 탓이다. 대법원장 측은 사법부 인사에 행정부 수반의 의사가 개입하면 권력분립과 사법권 독립이 훼손된다고 본다. 헌법 어디에도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반면 청와대는 재제청 거부를 대통령의 임명권 무력화로 규정했고, 대법원장이 원하는 인물을 앉히는 것이 사법부 독립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한쪽은 독립을, 다른 쪽은 견제를 말한다. 둘 다 헌법이 지키려는 가치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한쪽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사전 합의는 관행일 뿐이어서 합의 없는 제청을 위헌이라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동시에 대통령에게도 특정인을 지명할 수는 없지만, 최종 임명 여부를 판단할 권한은 있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이다. 다만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꾸리지 않은 채 남은 후보 중에서 다시 고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제청권을 껍데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임명권자가 후보 중 1명만 선호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문제는 권한의 유무가 아니라 한계이다.
임명권은 어디까지 거부할 수 있고, 제청권은 어디까지 독자적일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유독 날카로워진 데는 이유가 있다. 대법관 증원을 앞두고 이번 인선이 향후 ‘룰’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지금 물러서는 쪽이 앞으로의 판을 내준다는 계산이 양측을 경직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사안은 정쟁이 되었고, 국민의힘은 국회 권한 침해를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의 결정이 모든 것을 풀어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판결은 경계선을 그을 수는 있어도 신뢰를 복원하지는 못한다. 임명권자도 제청권자도 허수아비가 아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라 조율의 절차를 관행에서 제도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제청 전 협의의 방식과 거부 시 사유 제시 의무를 명문화하자는 논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공석의 부담은 남은 대법관과 재판을 기다리는 국민이 고스란히 진다. 그 비용을 치르는 쪽이 정작 권한 다툼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을 양측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김경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kyungsoo.kim@barun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