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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고 싶어도 일자리 없어”… 비수도권 청년 ‘엑소더스’ 가속 [연중기획-더 나은 미래로]

수도권 향하는 지방 청년들

8월 기준 20대 3만여명 수도권 순유입
서울에만 2만4671명 몰려 ‘쏠림’ 지속
수도권 이동 10명 중 4명 “일자리 때문”
고임금 일자리 집중도 9년새 5.8%P ↑

지역 경제력·생산성만으론 유출 못막아
이직·전문성 개발 등 지역 선택지 좁아
주거·문화 등 정주 인프라 격차도 부채질
“산업·교육·생활 생태계도 함께 구축해야”

“제가 원하는 직업 특성상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어요.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을 보면 공무원이나 자영업자가 대부분이에요. 지금이라도 고향에 원하는 일자리가 있다면 무조건 돌아가고 싶죠.”

충북 제천 출신 36세 남성 김모씨는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원하는 일을 찾아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 산 지 10년이 넘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은 여전하다. 그러나 맞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수도권에 머물고 있다.

생성형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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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처럼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는 지역 청년의 수도권행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6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의 월별 국내인구이동 통계를 합산한 결과 올해 1~8월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 순유입된 20대는 3만221명으로 집계됐다. 순유입은 전입자 수에서 전출자 수를 뺀 인원이다. 수도권을 떠난 20대보다 들어온 20대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선택지가 없다… 좋은 일자리는 수도권에

지역별로는 서울이 2만4671명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에도 20대 4만8380명이 수도권으로 순유입됐다. 서울만 놓고 보면 3만5900명이다. 지역에 청년층이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이 수도권 쏠림을 부추기고 있다.

연령대를 넓혀봐도 일자리는 수도권 이동의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옮긴 사람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41만8501명이다. 이 가운데 전입 사유가 ‘직업’인 사람은 17만4001명으로 41.6%를 차지했다. 10명 중 4명이 일자리를 이유로 이동한 것이다.

배경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일자리 격차가 있다. 취업자가 늘어나는 지역부터 달랐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역노동시장 양극화와 일자리 정책과제’를 보면 2013∼2023년 전국 취업자는 331만명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약 120만명이 경기 하남·화성·김포 등 수도권 12개 시에서 나왔다. 늘어난 취업자 3명 중 1명꼴이다. 반면 비수도권에서는 취업자 증가가 세종시, 전남 나주시와 전북 완주군 등 혁신도시, 수도권에 인접한 충청권 산업도시 등 일부 지역에 그쳤다.

고임금 일자리도 수도권에 몰리고 있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고임금 상위 20% 일자리의 수도권 집중도는 2015년 21.3%에서 2024년 27.1%로 5.8%포인트 높아졌다. 비수도권은 오히려 상위 일자리 비중이 작아졌다.

청년들이 선호할 만한 성장산업의 수도권 쏠림은 더 뚜렷했다. 정보통신과 바이오·의약, 반도체, 연구개발(R&D)과 같은 지식기반산업 고용의 경우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61.0%에서 64.3%로 높아졌다. 특히 이 분야에서 늘어난 ‘좋은 일자리’의 약 86%는 서울·경기가 흡수했다. 지역에서는 일자리 수는 물론 고임금·성장산업 일자리와 경력을 이어 갈 선택지까지 상대적으로 부족한 셈이다.

대구 출신 김모(37·여)씨는 고향에서 대학을 다니고 취업까지 했지만 결국 수도권으로 왔다. 지역에서는 직무와 근무 조건 등을 비교하며 일자리를 고를 여지가 크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기업과 일자리 종류가 많지 않아 선택지가 좁다고 느꼈다”며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기보다는 선택지를 넓히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경남 밀양 출신 34세 여성 배모씨 사정도 비슷했다. 배씨는 “지역 전체를 통틀어봐도 기업이 노후화되고 신입을 잘 뽑지 않는다”며 “친구 한 명은 고향 근처에서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지만 개업이 부담스러워 서울로 올라왔다”고 말했다.

일자리만이 서울행의 이유는 아니다. 산업연구원이 최종 학업을 마친 뒤 거주지를 두 차례 이상 옮긴 만 19∼39세 청년 800명을 조사한 결과 지역을 떠난 이유로 ‘일자리·사업’에 이어 ‘주거지’와 ‘교육·보육 및 가족 문제’가 많이 꼽혔다.

◆일자리로는 부족… 정착은 또 다른 문제

지역의 경제력과 생산성이 높다고 해서 청년이 머무는 것도 아니다. 국회미래연구원의 ‘지역 인구정책의 중장기 전환 방향: 인구 유치에서 산업·일자리 연계로’ 보고서를 보면 울산의 1인당 실질 지역내총생산(GRDP)은 2010~2024년 평균 6743만원으로 세종을 제외한 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러나 울산의 만 19~34세 청년 인구는 2016~2024년 순유출을 기록했다. 지역의 생산 수준이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와 생활 여건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경남 창원과 경북 포항, 충남 아산 등 전통 제조업 집적지역은 산업연구원이 분류한 이른바 ‘청년 경유지’다. 산업 기반은 있지만 주거 안정성과 문화·여가 시설, 교통 접근성 등 정주 여건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역이라는 뜻이다.

지역별 정주 여건 차이도 컸다. 산업연구원이 전국 229개 시·군·구의 일자리, 주거·복지, 문화·여가, 사회적 관계망 등을 종합해 산출한 청년친화지수에서 상위 10%(23곳) 대부분이 수도권이었다. 비수도권은 충남 천안, 충북 청주, 경남 창원·진주·김해 5곳뿐이었다. 특히 문화·여가 인프라는 대부분 서울에 몰려 있었다.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옮긴 청년 3명 중 1명은 다시 수도권으로 돌아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이 비수도권에 머문 기간은 평균 1.6년으로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결국 지역 청년의 정착을 위해서는 일자리 수만 늘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과 근로 조건은 어떤지, 첫 직장 이후 이직·승진을 통해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지, 생활기반시설이 충분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구 출신 김씨는 서울 생활에 익숙해진 만큼 고민은 되지만 원하는 일자리가 있다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그는 “생활비 부담도 있고 서울에서는 내 집 마련이 막막하게 느껴지지만 대구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반면 배씨는 “고향에 원하는 일자리가 생겨도 서울에 남고 싶다”며 “직업뿐만 아니라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는 광역권 단위로 기업과 인재가 모일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양 교수는 “지역에도 일자리는 있지만 승진이나 이직, 전문성 개발 등 커리어 패스를 설계하기 어렵고, 관련 인력·교육기관 등 생태계도 부족하다”며 “직업의 가짓수와 선택지가 서울·수도권에 비해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도시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을 나눠 배치해도 필요한 기능을 갖추긴 어렵다”며 “인접 도시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기업과 전문인력, 교육·연구 기반이 함께 모일 수 있게 해야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