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김춘수 시인이 원고를 내려다보며 마이크 앞에서 호소문을 읽고 있다. 곁에 앉은 박완서 소설가는 고개를 숙인 채 듣는다. 기자회견장 현수막에는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바라는 문인들의 기자회견’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시와 소설로 독자를 만나던 작가들이 이날은 갯벌을 지켜달라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였다.
2001년 5월 16일, 서울 종로구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문인들의 기자회견이다. 김춘수, 박완서, 정현종, 황지우 등 문인들이 참석했고, 현장에 오지 못한 작가들도 서명과 음성 메시지로 뜻을 보탰다. 간척사업 중단을 촉구하는 데 동참한 문인은 전북지역 문인 11명을 포함해 모두 44명이었다. 문학적 성향과 세대를 달리하는 작가들이 자연과 생명의 문제 앞에서 한목소리를 냈다.
당시 새만금 간척사업은 개발과 환경보전이 맞서는 주요 사회 현안이었다. 농지 확보와 지역발전에 대한 기대가 있는 한편, 갯벌 소실과 수질 문제를 우려하는 반대도 거셌다. 문인들은 이 논쟁을 경제적 손익의 계산에만 맡길 수 없다고 봤다. 갯벌에서 살아가는 생명과 어민들의 삶, 앞으로 그 터전을 물려받을 세대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춘수 시인이 읽은 호소문은 자연을 인간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에게 삶의 터전이 필요하듯 철새와 조개, 갯지렁이에게도 살아갈 자리가 있다는 뜻을 담았다. 문인들은 사업을 중단하고 훼손된 자연을 회복할 방안과 방조제를 친환경적으로 활용할 대안을 모색하자고 요구했다. 개발의 속도를 늦추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 먼저 살펴보자는 호소였다.
사진 속 기자회견장은 단출하다. 탁자 위에는 원고와 책, 찻잔과 안경, 검은 모자가 놓여 있다. 참석자들의 이름표 앞에 마이크가 서 있고, 뒤편 현수막이 모임의 목적을 설명한다. 거대한 공사 현장과는 멀리 떨어진 서울의 카페였지만, 이들이 꺼낸 말은 바다와 갯벌을 향했다. 작가들의 문장은 작품의 지면을 벗어나 현실의 새만금 간척 사업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25년이 지난 사진에는 갯벌도 방조제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것을 걱정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손에 든 종이가 남아 있다.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지에 앞서, 무엇을 사라지게 할 것인지 묻던 자리다. 외장하드 속 두 장의 사진은 개발의 기대가 컸던 시절, 그 이면의 상실을 말했던 문인들을 기록한다. 책상 앞에서 문장을 고르던 이들이 마이크 앞에 나선 이유는 분명했다. 말할 수 없는 생명들의 자리를 사람의 언어로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원택 전북특별자치도지사는 6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현대자동차 새만금 투자 지원과 피지컬 AI,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새만금개발청이 최근 발표한 새만금 기본계획 변경안을 두고 환경단체가 "일방적인 변경안을 철회하고 지역 주민 등이 포함된 새만금위원회를 꾸려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 새만금 내부 연결도로 공사 과정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서식지가 훼손됐다는 주장도 나오는 등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