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식! 김상식!”
베트남 축구대표팀 라커룸. 선수들의 연호가 울려 퍼졌다. 다들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며 한 사람을 바라봤다.
김상식 감독이 라커룸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무릎을 어정쩡하게 굽히고 두 팔은 허리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막춤 트위스트’였다.
박자는 자꾸 반 박자씩 밀렸지만 표정만큼은 누구보다 신이 나 있었다.
선수들은 자지러졌다. 휴대전화를 치켜들고 고함을 지르며 함께 몸을 흔들었다.
“우승하면 춤을 추겠다.”
결승을 앞두고 선수들과 한 약속이었다. 감독은 온몸을 던져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2026년 8월, 베트남이 아세안컵 결승에서 숙적 태국을 넘어 2연패를 달성했다. 2년마다 열려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이 대회에서 베트남이 처음 쓴 역사였다. 박항서 감독 시절에도 없던 일이었다.
경기장 밖은 뜨거웠다. 오토바이가 도로를 메웠다. 경적은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이어졌다. 베트남 국기 금성홍기 사이로 태극기가 펄럭였다. 인구 1억 나라가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김.상.식. 똣(최고)!”
3년 전, 전주에서 그가 들은 외침은 전혀 달랐다.
버스 앞에 선 감독
2023시즌 전북 현대는 개막부터 흔들렸다. 우승이 익숙했던 팀이 순위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4월 1일 홈 포항전 관중석에는 감독과 대표이사를 비판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서포터즈는 응원을 멈췄다. 1-2 역전패 뒤에도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팬들은 구단 버스 앞을 막아섰다. 대치는 2시간 동안 이어졌다.
“감독은 물러나라.”
그에게 전북은 남의 팀이 아니었다.
2009년 녹색 유니폼을 처음 입은 뒤 선수, 코치, 감독으로 15년을 보낸 팀이었다. 처음 온 해 선수로 우승했고 2021년 감독에 오른 첫해에도 리그 정상에 섰다.
결국 그해 5월, 그는 스스로 물러났다. 마지막 인사는 손편지였다.
‘전북답지 않은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제는 전북을 사랑하는 한 명의 팬으로 멀리서 응원하겠다고 썼다.
그렇게 녹색 유니폼을 벗었다.
또 태국, 또 김상식이었다
1년 뒤, 그가 선 곳은 하노이였다. 베트남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성인 대표팀과 23세 이하 대표팀을 함께 맡았다.
베트남 축구는 한동안 이어진 상승세가 꺾인 상태였다. 새 감독에게 주어진 과제는 분명했다. 다시 동남아 정상에 오르는 것.
넘어야 할 상대도 정해져 있었다. 태국이었다.
베트남과 태국은 동남아 축구의 앙숙이다. 두 나라가 맞붙는 날이면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승부의 추는 오랫동안 태국 쪽으로 기울었다. 태국은 아세안컵 최다 우승국이다.
김 감독은 첫 대회부터 답을 내놨다.
아세안컵 결승에서 ‘동남아 최강’ 태국을 꺾고 정상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U-22 대표팀을 이끌고 나선 동남아시안게임 결승에서도 태국을 연장 끝에 3-2로 눌렀다.
그리고 다시 아세안컵 결승.
상대는 또 태국이었다.
결과도 같았다. 베트남이 웃었다.
이름부터 외운 한국인 감독
승리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성조까지 정확히 부르려고 따로 연습했다.
베트남 국가는 유튜브를 보며 혼자 배웠다. 베트남어 가사를 한글로 받아 적고, 그 위에 음표와 음높이를 그려 넣었다. 발음은 선수들이 하나하나 고쳐줬다. 경기 전 국가가 울리면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함께 부른다.
춤도 선수들과 거리를 좁히는 방식이었다.
“언제까지 감독이 무게만 잡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닙니까. 축구 훈련이라든지 정신적으로 너무 강하게 시키고 있고, 또 생활 면에서 그냥 친형처럼 대하고 있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많이 나타난 것 같아요.”
훈련장에서는 엄하게, 밖에서는 ‘친형’처럼.
검은 셔츠의 주술
베트남 팬들은 이제 김상식 감독의 옷장까지 들여다본다.
그가 즐겨 입는 검은 폴로셔츠는 현지에서 ‘풍수 셔츠’로 불린다. 행운을 부르는 셔츠라는 뜻이다. 첫 아세안컵 트로피를 들어 올린 날도, U-23 대표팀을 이끌고 동남아 정상에 선 날도 그는 검은 셔츠 차림이었다.
이번 아세안컵 조별리그에서 딱 한 번, 김 감독이 흰 셔츠를 입고 벤치에 나타났다. 싱가포르전이었다.
베트남은 이기지 못했다.
팬들 사이에서 “흰 셔츠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번졌다.
다음 인도네시아 원정, 그는 다시 검은 셔츠를 입었다.
베트남은 3-0으로 완승했다.
수비수 팜쑤언마인을 비롯한 선수들은 김 감독의 검은 셔츠에 입을 맞췄다.
‘킹상식’의 탄생
베트남이 아세안컵을 들어 올린 건 통틀어 네 번. 그 가운데 두 번이 김 감독의 부임 이후 나왔다.
현지에선 그를 ‘킹상식’이라고 부른다. 2연패를 확정한 직후 김 감독도 “오늘은 내가 베트남 축구의 왕”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런데 이번엔 춤이 없었다.
“춤추기 싫었던 게 아닙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모든 관심과 영광이 제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돌아가길 바랐습니다.”
전주에서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던 감독.
3년 뒤 하노이에서는 선수들의 손에 들려 하늘로 솟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