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고화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에 디지털카메라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선명한 화질보다 2000년대 특유의 색감과 촬영하는 재미를 찾는 젊은 소비자가 늘면서다. 카메라를 직접 꾸미는 문화까지 퍼지면서 파우치와 스트랩, 키링 등 관련 액세서리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8일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올해 1~9월 디지털카메라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 증가했다. 9월 한 달간 거래액은 22%, 구매자 수는 35% 늘었다. 특히 전체 구매자의 63%가 20대 이하로 집계됐다.
젊은 층 사이에서 확산하는 '디놀'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디놀은 디지털카메라와 놀이를 합친 말이다. 카메라를 들고 나들이를 가거나 촬영한 사진을 꾸미고 공유하는 활동을 뜻한다. 스마트폰과는 다른 색감의 사진을 찍는 과정 자체를 취미로 즐기는 것이다.
에이블리에서는 카메라 본체뿐 아니라 관련 액세서리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9월 '디카 파우치' 검색량은 전년 동기 대비 94% 증가했고, 관련 상품 거래액은 534% 늘었다. '디카 케이스' 검색량과 거래액도 각각 252%, 119% 증가했다.
카메라를 손목에 걸어 휴대하는 '디카 스트랩'의 검색량은 98%, 거래액은 109% 늘었다. 특히 '디카 키링' 관련 상품 거래액은 3779%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38.8배 수준이다.
이른바 '디꾸(디카 꾸미기)' 문화가 확산하면서 카메라가 촬영 도구를 넘어 개성을 표현하는 소품으로도 활용되는 모습이다.
개별 상품 판매에서도 변화가 확인됐다. 에이블리 입점 마켓 '다이렉트박스'의 '데이레코드 빈티지 카메라'는 지난 9월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236% 증가했다. '포토토'의 '빈티지 캠코더' 거래액도 같은 기간 15% 늘었다.
디지털카메라 열풍은 다른 패션 플랫폼에서도 확인된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29CM에 따르면 올해 5~7월 '디지털카메라'와 '디카' 검색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70%, 129% 이상 증가했다. 카메라·캠코더 카테고리 거래액도 88% 이상 늘었다.
고가 카메라에도 구매 수요가 몰렸다. 29CM가 지난 6월 쇼핑 행사 '이구위크'에서 한정 수량으로 선보인 리코 GR4는 판매 시작 1분 만에 품절됐다. 지난 2월 한정 판매한 소니 카메라도 준비한 물량이 1분 만에 모두 팔렸다. 카메라 액세서리 거래액 역시 같은 기간 120% 이상 증가했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지그재그에서도 올해 6~7월 디지털카메라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184% 늘었다.
패션 플랫폼에서 카메라와 관련 용품의 판매가 함께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의류와 가방을 구매하던 고객들이 취미 용품까지 같은 플랫폼에서 찾는 흐름도 확인된다.
카메라 브랜드들도 복고풍 디자인과 촬영 경험을 앞세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코닥 브랜드를 사용하는 레토프로(RETO Production)는 지난해 9월 키링처럼 휴대할 수 있는 초소형 디지털카메라 '차메라(CHARMERA)'를 선보였다.
차메라는 무게가 약 30g에 불과하며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지원한다. 1440×1080 해상도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고, 빈티지 필터와 날짜 표시 기능도 갖췄다.
제품 디자인은 1980년대 코닥의 일회용 카메라에서 착안했다. 기본 디자인 6종과 시크릿 에디션 1종으로 구성됐으며, 구매자가 제품을 개봉해야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는 랜덤박스 방식으로 판매된다.
카메라를 가방에 매달아 액세서리로 사용하면서 필요할 때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도 관련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한국후지필름은 올해 2월 사진과 영상 촬영, 즉석 인화 기능을 결합한 '인스탁스 미니 에보 시네마'를 출시했다. 가격은 59만원이다.
193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시대별 영상 분위기를 표현하는 다이얼을 탑재했다. 이용자가 직접 다이얼을 돌려 복고풍 효과를 선택하고, 촬영한 사진을 인화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6월에는 셀프타이머 기능을 추가한 '인스탁스 미니 13'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에이블리와 후지필름몰에서 예약 판매를 진행했으며, 구매 고객에게 미니어처 키링을 제공했다.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서는 제품 체험과 사진 꾸미기를 결합한 팝업스토어도 운영했다. 카메라 판매뿐 아니라 촬영하고 꾸미는 경험까지 소비자에게 제공한 사례다.
디지털카메라 수요가 증가하는 배경에는 스마트폰과 다른 촬영 경험이 있다.
최신 스마트폰이 선명한 화질과 편리한 편집 기능을 앞세운다면, 오래된 디지털카메라와 복고풍 제품은 거친 화질이나 특유의 색감 자체가 매력으로 받아들여진다. 버튼을 누르고 사진을 확인하는 과정도 즐길 거리다.
소비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카메라 본체를 구입한 뒤 파우치와 스트랩, 키링 등을 추가로 구매하는 수요가 생긴다. 에이블리의 액세서리 거래액 증가와 29CM의 관련 용품 판매 확대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흐름이다.
패션 플랫폼 입장에서는 카메라가 취미·라이프스타일 상품으로 고객의 구매 영역을 넓힐 수 있는 품목이 된 셈이다.
특히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카메라 본체와 액세서리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고, 제조·판매 브랜드들이 복고풍 제품을 내놓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디지털카메라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 제품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다. 사진을 찍고 꾸미고 공유하는 활동에 소비자가 돈을 쓰면서 카메라가 패션과 취미 상품의 영역으로 넓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