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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최후의 보루' 국회의사당 [건물로 읽는 서울]

서울은 거대한 시간의 박물관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의 건물들은 단순한 철골과 콘크리트의 덩어리가 아닙니다. 폐허 속에서 일궈낸 발전의 역사를 증명하는 낡은 건축물부터, 새로운 도약의 상징으로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는 최첨단 마천루까지. 서울의 건물들은 이 도시가 겪어온 파란만장한 시대상과 시민들의 치열했던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입체적인 기록물입니다. '건물로 읽는 서울'은 공간에 겹겹이 쌓인 궤적을 짚어보는 여정입니다. 한 시대의 상징이 되었던 공간이 탄생하게 된 과거의 배경을 깊이 있게 조명하고, 현재 그 안에서 호흡하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은 국민의 의사가 모이고 정치가 이루어지는 핵심적인 공간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돔 지붕이 열리고 로봇 태권브이가 출동한다는 재미있는 전설을 간직한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한국 현대 정치사의 파란만장한 굴곡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사적 장소다.

 

현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에 자리 잡은 국회의사당은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여의도 전체 면적의 8분의 1을 차지하는 넓은 부지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길이 122m, 폭 81m에 달하며, 밑지름 64m, 무게 1천 톤의 거대한 돔을 얹고 있다. 건물을 떠받치는 24개의 각주는 1년 24절기를, 전면의 기둥 8개는 전국 8도를 상징한다. 특유의 푸른빛을 띠는 돔 지붕은 처음에는 동판 본연의 붉은색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며 산화되어 현재의 색으로 변모했다. 당초 설계에는 돔이 없는 평지붕이었으나, 건축 예술에 정치권력이 개입하여 돔이 추가되었다는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둥근 돔 지붕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이 찬반 토론을 거쳐 원만하게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다는 의회민주정치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1956년 태평로 국회의사당 (현 서울특별시 의회) /사진=국가기록원
1956년 태평로 국회의사당 (현 서울특별시 의회) /사진=국가기록원
1959년 이승만 대통령 남산 국회의사당 신축지 시찰 /사진=국가기록원
1959년 이승만 대통령 남산 국회의사당 신축지 시찰 /사진=국가기록원
1969년 국회의사당 신축기공식 시삽 /사진=국가기록원
1969년 국회의사당 신축기공식 시삽 /사진=국가기록원
1973년 국회의사당 본관 상량식 /사진=국가기록원
1973년 국회의사당 본관 상량식 /사진=국가기록원
1975년 국회의사당 준공식 /사진=국가기록원
1975년 국회의사당 준공식 /사진=국가기록원
1975년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국가기록원
1975년 국회의사당 전경 /사진=국가기록원

오늘날의 웅장한 모습과 달리, 국회의사당은 오랜 기간 정처 없이 옮겨 다녀야 했던 지난한 변천사를 거쳤다. 우리나라 최초의 제헌국회가 개원한 곳은 1948년 서울 세종로의 중앙청이었다. 그러나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회도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임시수도였던 대구의 문화극장을 비롯해 부산 문화극장, 부산극장, 경남도청 무덕전 등 전쟁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거처를 옮기며 임시 의사당으로 사용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환도한 이후에도 중앙청 중앙홀, 태평로 시민회관 별관, 대한공론사 등을 전전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1975년 9월이 되어서야 마침내 현재의 여의도 의사당으로 입주하며 길었던 태평로 시대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여의도 정치 시대를 열었다.

 

흥미롭게도 여의도 국회의사당 부지는 원래 사직공원 일대로 검토되었다. 하지만 행정기능이 서울 한 곳에 너무 집중된다는 반론 때문에 1967년이 되어서야 여의도로 최종 결정되었다. 조선시대 궁녀들의 화장터와 공동묘지가 있던 여의도 모래섬에 총공사비 135억 원, 연인원 100만 명을 투입해 6년 만에 거대한 민의의 전당을 완공한 것이다. 

국회의사당 내부에는 과거 정치 문화의 흔적으로 인해 사라진 것들이 존재한다. 과거 의원들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때 무기로 둔갑했던 재떨이와 일반 명패는 자취를 감췄다. 재떨이는 1973년 회의장 내 금연 조치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고, 명패는 전자식으로 대체되어 더 이상 집어 던질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방문객 출입구 구조 변경으로 인해 각 층 명칭이 조정되면서 지하 2층이 없어지기도 했다. 의사당 입구에는 선악을 판단한다는 전설의 동물 해태상이 굳건히 버티고 서 있다. 이는 국회가 나라의 일을 잘 감시하고 잘못을 올바르게 처결하라는 의미로, 대한민국 정치 1번지 국회를 향한 국민의 엄중한 염원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