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분이나 서둘러 나왔는데도 열세 번째다. 나는 빵집 귀퉁이를 돌아 주차장으로 이어진 줄 끄트머리에 선다. 빵집 창가로 놓인 세 개의 긴 의자는 이미 부지런한 손님들 차지다. 벤치에는 두 명씩 앉을 수 있는데 모르는 타인끼리 앉아 있으려면 여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저 벤치에 앉은 대기자가 부럽다. 저들은 재고 빵을 살 수 있는 특혜를 누릴 것이다. 얼마나 서둘러야 저 의자에 앉을 수 있을까. 나는 더 서둘러야 했다. 괜히 책장에서 책을 골라 오느라 미적거린 게 후회된다.
아침 여덟 시가 되면 빵집 문이 열리고, 재고 빵을 싸게 살 수 있다. 빵집은 구운 빵을 하루만 팔고, 재고를 이튿날 아침에 소진한다. 워낙 유명한 빵집이기도 하고, 재고 떨이로 케이크도 살 수 있어서 주민들이 줄을 서는 것이다. 연휴를 앞두어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줄이 길다.
나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이 줄의 생리를 안다. 아이들 생일 케이크를 종종 이렇게 사곤 했다. 그래서 무료하게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도 챙겨온 것이다. 열세 번째는 괜찮은 편이다. 내 뒤로 꼬리가 길어진다. 어느새 나는 줄에서 중간쯤이 된다. 원하는 빵은 사지 못할지 모르나 빈손으로 돌아서지는 않을 듯싶다. 뒷줄을 돌아본다. 아마 저들 중 상당수는 소득이 없을 것이다.
아침 공기가 부쩍 쌀쌀해졌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가게가 열리기를 기다린다. 나는 책에 눈을 박는다. 이렇게 줄을 서 있어야 하는 나 자신이 못마땅하고 부끄럽다. 나는 빵집 주인이 얄밉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를 오래전부터 미워했다. 가게 문이 열리면 벌어질 살풍경을 그가 알까. 손님들은 매장으로 쏟아져 들어가서 앞다투어 빵을 챙기느라고 정글이 따로 없다. 빵을 동시에 잡고 어색하게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저렇게 많은 빵을 누가 먹으려고 쓸어 담는지 꼴사나운 손도 있다. 아예 질려서 우두망찰 굳어 서 있는 손님도 있다.
나는 이 도떼기시장 같은 빵 쟁탈전을 소설에 그린 적이 있다. 손님 중에는 이 치열한 소동극을 긴장감 있게 즐기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은 마음 깊이 열패감을 느끼리라 생각한다. 빈손으로, 혹은 달랑 쿠키 하나 건진 손님도 그렇지만, 앞자리에 줄을 서서 빵을 많이 차지한 사람 역시 모종의 수치심에 휩싸인다. 졸지에 야만인이 된 기분. 서로가 서로에게 구경거리가 된 기분은 찜찜하다. 주인은 어떤 마음일까? 상술은커녕 고급 빵을 값싸게, 선의로 나누고 있다고 여길지 모른다.
때마침 나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굴(Oyster)’을 읽고 있다. 실업자 아버지와 길거리로 구걸을 나온 여덟 살 소년은 식당 메뉴판에서 ‘굴’을 발견한다. 소년은 한 번도 굴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굶주린 소년에게 굴을 설명해 주지만 소년이 상상해 내는 굴은 천상의 음식 같다. 굴을 먹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고 마는 소년. 신사들이 소년을 식당으로 데려가 굴을 먹이며 눈요깃거리로 삼는다. 게걸스럽게 굴을 먹으며 소년은 심한 수치심을 느낀다.
하필 이 소설을 읽을 게 뭐람. 나는 줄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외쳤다.
“여러분,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고 싶어요. 빵을 네 개씩만 고르는 건 어떨까요? 너무 적다면 다섯 개씩 챙겨도 좋고요. 그러면 여기 줄 선 분들이 고루 빵을 사 갈 수 있을 텐데요.”
사람들은 얼떨떨해서 바라본다. 나는 겸연쩍어서 덧붙인다.
“제가 빵을 못 살까 봐 그러는 게 아니에요. 전쟁 치르듯 하는 게 너무 싫어서요. 차례차례 자기 몫을 사는 게 어떨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뒤에서는 반응이 없고 의자에 앉은 남자가 내 말을 받는다.
“저는 공장 사람들과 먹으려고 한 시간째 줄을 서 있다오. 다섯 개로는 턱도 없지.”
“그래요” 하고 그 옆에 앉은 여자가 일어선다.
“아침부터 수고를 한 사람이 더 가져가는 게 뭐가 문제예요. 이게 이상한가요? 뭐가 이상한가요?”
여자는 별꼴이라는 표정이다.
나는 정말 줄에 서서 그런 망상을 했다. 어떤 해방감도 없이 마음이 더 참담하다. 가게 문이 열리는지 줄이 앞으로 수축한다.
전성태 소설가 국립순천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