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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국가의 핵심은 신뢰”…에스토니아대사가 밝힌 성공 비결 [더 디플로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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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국가 핵심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
한 번 낸 정보 다시 요구하면 불법”
“러·우 전쟁, 지역 넘어 세계 겨냥
북한, 참전 통해 새로운 군사역량 확보”
“韓 방산, 가격·품질·납기 모두 경쟁력
방산 넘어 에너지·건설 협력도 기대”
“디지털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는 지난 7일 서울 중구 주한에스토니아대사관에서 진행한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국이 세계적인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한 비결로 ‘신뢰’를 꼽았다. 인구 130만여명의 북유럽 소국 에스토니아는 대부분의 행정서비스를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디지털 선도국이다. 세계 최초로 비거주 외국인에게 디지털 신원을 부여하는 ‘전자영주권(e-Residency)’ 제도도 도입했다.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가 지난 7일 주한에스토니아대사관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가 지난 7일 주한에스토니아대사관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희태 기자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에스토니아는 부족한 인력과 재원으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디지털 전환을 추진했다. 이후 디지털 기술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소국의 행정 효율성과 국가 안보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기관이 국민으로부터 이미 제출받은 정보를 다시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 번만(once-only)’ 원칙이 대표적이다. 국민은 자신의 개인정보에 어떤 기관이 언제 접근했는지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셉 대사는 “누구도 모든 데이터에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업무상 필요한 경우에만 접근이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인프라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룩셈부르크에 국가 핵심 데이터를 복제·보관하는 세계 최초의 ‘데이터 대사관’을 구축했다. 자연재해나 군사적 공격으로 본토의 정보시스템이 마비되더라도 국가의 핵심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 유희태 기자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 유희태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군사력 강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올해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5.4%인 24억유로(약 3조6000억원)에 달한다. 셉 대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군사행동은 지역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그 의도는 전 세계를 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북한이 참전 과정에서 이전에는 갖지 못했던 군사역량을 확보하고 있다”며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다.

 

안보 환경이 악화하면서 한국과 에스토니아의 방산 협력도 확대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한국산 K9 자주포를 핵심 포병 전력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천무 다연장로켓도 도입할 예정이다. 셉 대사는 한국 방산의 강점으로 가격과 품질, 안정적인 납기를 꼽았다. 최근에는 에스토니아에서 첫 한·에스토니아 방산산업 포럼도 열렸다. 다음은 일문일답.

 

―에스토니아가 세계적인 디지털 강국으로 도약한 배경은.

 

“1991년 독립 당시 에스토니아는 가난한 나라였다. 반세기에 걸친 소련의 점령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 사실상 국가를 처음부터 재건해야 했다. 한정된 재원으로 효율적인 정부를 구축할 방안을 고민하던 시기에 인터넷이 등장했다. 해외 시스템을 도입할 자금은 부족했지만 뛰어난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들이 있었다. 이들이 직접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한국에 ‘한강의 기적’이 있다면 에스토니아에도 짧은 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룬 기적이 있다.”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는 디지털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국민이 행정 업무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원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유희태 기자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는 디지털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국민이 행정 업무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원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유희태 기자

―에스토니아 디지털정부를 관통하는 핵심 원칙은.

 

“여러 원칙 중에서도 ‘한 번만(once-only)’ 원칙을 꼽고 싶다. 정부기관이 국민으로부터 한 번 제출받은 정보는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기관 간 공유해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같은 정보를 반복해서 요구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정부가 이미 국민의 주소를 보유하고 있다면 다른 기관이 주소를 다시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에스토니아에서 불법이다.”

 

―개인정보 오·남용 우려는 없나.

 

“국민은 언제든 자신의 개인정보에 누가 접근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접근 기록이 남기 때문에 불법적인 접근이 확인되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누구도 모든 데이터에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핵심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정부에 대한 신뢰와 디지털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나 특정 정당,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더라도 디지털 시스템은 믿고 이용한다는 의미다. 이제 디지털 행정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과거의 종이 행정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정도다. 그만큼 시스템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자정부가 국민 생활에 가져온 변화는.

 

“대표적인 사례가 세금 신고다. 정부가 필요한 정보를 이미 보유하고 있어 신고서가 사전에 작성되기 때문에 통상 1분이면 신고를 마칠 수 있다. 전자서명 서비스만으로도 국내총생산(GDP)의 약 2%에 해당하는 자원을 절약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디지털정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비용 절감을 넘어 국민이 행정 업무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원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는 한국과의 방산 협력에 대해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장기적인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려 한다”고 밝혔다. 유희태 기자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는 한국과의 방산 협력에 대해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장기적인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려 한다”고 밝혔다. 유희태 기자

―외국인에게 디지털 생태계를 개방한 e-Residency 제도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면서도 에스토니아에 회사를 설립하고 전자서명 등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현재 187개국에 e-Residency 이용자가 있으며, 이들이 설립한 기업은 4만4000개가 넘는다. 에스토니아에서 새로 설립되는 기업 5곳 중 1곳이 e-Residency 이용자가 세운 기업이다.”

 

―룩셈부르크에 ‘데이터 대사관’을 구축한 이유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자연재해뿐 아니라 국가 안보 위협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에스토니아는 국토가 작아 국내에 서버를 분산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핵심 데이터를 해외에도 복제·보관하기 시작했다. 영토의 일부 또는 전체를 잃는 상황에서도 국가의 핵심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다른 유럽 국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022년이 아닌 2014년에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이 있었고, 2007년에는 에스토니아를 겨냥한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 발생했다. 러시아의 공격적인 정책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러시아의 추가 공격이 임박했다고 보나.

 

“러시아의 추가 공격 가능성을 경고하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위협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 막연한 공포를 키우기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춰서도 안 된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에스토니아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이상으로 늘리고 새로운 군사역량을 확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러시아는 북한군을 전쟁에 끌어들여 우크라이나 전쟁을 한반도 문제로까지 확대했다. 북한은 참전 과정에서 이전에는 갖추지 못했던 새로운 군사역량을 확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결코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 유희태 기자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 유희태 기자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고 보나.

 

“개인적으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확대하기를 희망한다. 한국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와 방어체계를 개발해 왔다. 이러한 역량이 우크라이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존중한다.”

 

―에스토니아가 한국산 무기를 선택한 이유는.

 

“한국 방위산업의 강점은 가격과 품질, 납기 경쟁력이다. 가격이 합리적이고 성능도 우수한 데다 약속한 납기를 준수한다는 점에서 신뢰가 높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무기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납기를 준수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이러한 측면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방산 협력을 무기 구매를 넘어 확대할 계획인가.

 

“한국과의 방산 협력을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장기적인 협력 관계로 발전시키려 한다. 에스토니아 방위산업은 아직 성장 단계지만 인공지능(AI) 기반 상황인식 기술과 대드론 체계, 무인차량 등 첨단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성장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기업들이 한화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으며, 최근에는 에스토니아에서 첫 한·에스토니아 방산산업 포럼도 열렸다.”

 

―한국과의 경제협력에서 중점을 두는 분야는.

 

“방산과 에너지, 식음료, 건설 등 4개 분야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건설 분야에서는 에스토니아가 강점을 지닌 친환경 목조 건축 기술과 경험을 한국과 공유하고 싶다.”

 

―인구가 적은 에스토니아에서 세계적인 스타트업이 잇따라 탄생한 비결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에스토니아 개발자들이 만든 ‘스카이프’다. 스카이프의 성공으로 경험과 자본을 축적한 인재들이 새로운 기업에 재투자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에스토니아는 인구 대비 스타트업과 유니콘 기업이 세계적으로 많은 나라 중 하나다.”

 

타넬 셉 주한에스토니아대사는…

 

●에스토니아 외교부 사이버외교국장 역임 ●사이버안보 특임대사로 국제 사이버안보 협력 및 디지털 외교 담당 ●2025년 8월 주한에스토니아대사 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