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표정과 말투를 곱씹고, 사소한 소음에도 쉽게 지치며, 타인의 감정까지 신경 쓰느라 에너지를 소진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예민하다'는 말로 표현되는 이런 특성을 두고 자신을 탓하기도 하지만, 예민함을 무조건 고쳐야 할 문제로 볼 필요는 없다는 전문가의 설명이 나왔다.
내과 전문의 김태균 원장은 지난 3일 자신이 운영하는 구독자 95만 명의 유튜브 채널 '닥터딩요'에 공개한 영상에서 고도의 민감성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초과민자(HSP·Highly Sensitive Person)'의 특징과 생활 관리법을 소개했다.
김 원장은 HSP를 정신질환이 아닌 타고난 기질로 설명하며, 자신의 특성을 이해하고 외부 자극과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자신 역시 예민한 편이라며 "전국 예민 대회가 있으면 부산 대표로 나갈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HSP의 민감성이 다른 사람의 감정과 반응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심리적 측면뿐 아니라 소리와 빛, 촉감 등 감각 자극을 강하게 받아들이는 특성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HSP라는 용어는 미국 심리학자 일레인 아론이 1990년대 후반 소개했다. 심리학 연구에서는 감각처리민감성(이라는 개념으로도 다뤄진다. 다만 HSP는 공식적인 정신질환 진단명이 아니며, 민감성의 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김 원장은 HSP의 주요 특징으로 깊이 있는 정보 처리, 감각 자극에 대한 높은 반응성, 공감 능력, 미묘한 변화에 대한 민감성을 꼽았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여러 차례 되짚어 생각하거나, 주변의 작은 소음에도 쉽게 피로해지는 모습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특히 다른 사람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습관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 대화방에 답장 하나를 보내면서도 누군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지, 다른 사람의 의견과 충돌하지 않을지 고민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쓸 에너지가 빠르게 소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대부분의 사람은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며 타인의 표정과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을 향한 평가라고 해석하기보다, 상대방이 별다른 생각 없이 행동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예민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거짓 합의성 편향'과 연결했다.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다른 사람도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을 무례하거나 잘못된 사람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소음 자체로 인한 불편함에 더해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았다'는 판단까지 이어지면 분노가 커질 수 있다. 김 원장은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의 행동을 계속 분석하기보다 자신의 감각과 감정이 과도하게 활성화됐다는 점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이 제안한 생활 관리법의 핵심은 자신의 민감성을 인정하고 자극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는 첫째로 자신의 기질을 이해하는 심리 교육, 둘째로 감정과 생각을 한발 떨어져 바라보는 마음챙김 명상, 셋째로 불편한 감정을 없애려 하기보다 받아들이고 가치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수용전념치료(ACT) 원리를 소개했다.
그는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기보다 '내가 지금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또 친구를 만나는 일이 피곤하더라도 그 만남이 자신에게 중요한지 따져보고, 가치 있다고 판단한다면 한 걸음씩 행동에 옮겨보라고 조언했다.
신체적인 방법으로는 천천히 숨을 내쉬는 호흡, 주변의 시각·촉각·청각 자극을 차례로 알아차리는 감각 접지법 등을 제시했다. 소음이 힘들다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활용하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정 뒤에는 혼자 쉬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방법으로 들었다.
김 원장은 하루 동안 감당할 수 있는 자극의 양을 예산이나 배터리에 비유했다. 대인관계나 회식처럼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정이 있다면 다른 활동을 줄이고, 업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스마트폰 알림을 끄거나 확인 시간을 정해두는 식으로 자극을 관리하라는 설명이다.
그는 예민한 사람에게 무조건 둔감해지라고 요구하기보다 자신의 특성에 맞는 환경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감성은 피로를 쉽게 유발할 수 있지만, 주변의 세밀한 변화를 감지하고 예술이나 음악 등에 깊이 반응하는 특성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우리는 우리가 잘 필 수 있는 흙을 찾는 게 우리의 타고난 기질을 발휘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이라며 "무뎌지려고 절대 노력하지 말고, 당신만의 온실을 찾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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